그리스 국민이 국제사회의 구제 금융 지원에 따른 정부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며 다양한 형태로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7만 명이 살고 있는 아테네 광역도의 네아 이오니아 구(區)는 주민들에게 신설된 재산세를 내지 말라고 촉구했다. 재산세 신설은 구제금융 6회분(80억 유로)을 받기 위한 정부의 핵심 조치였다. 구청이 나서 세금 납부 불복종 운동을 벌이는 것에 대해 이라클리스 고트시스 구청장은 “구민들이 세금 낼 돈이 없는 데다 신설된 세금은 불법이다”라고 주장했다. 구의회도 재산세와 전기요금이 한 장의 고지서로 청구되자 전기요금만 내는 방법을 알려주며 재산세 납부 거부를 부추기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구의사당 출입문에는 ‘우리는 더 이상 돈이 없다. 우리는 내지 않겠다’라고 쓰인 포스터가 붙었다.
27일 아테네 시내에서 발견된 반정부 포스터에는 유럽연합(EU)의 그리스 구제책 마련을 주도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나치 친위대원으로 분장시키고 ‘공공의 골칫거리’라고 모욕하는 내용이 등장했다.
이종훈 파리특파원
일부 변호사와 노조, 사회단체는 정부의 재산세 징수와 공무원 수만 명 임시 휴직 등의 인력 및 예산 감축 정책을 무산시키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파업 중인 노조원의 복귀를 지시하는 긴급 통지문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일부 국영기업은 일시휴직 대상이 될 수 있는 공무원 명단 제출을 거부했다. 이런 불복종 운동은 환경미화원, 택시운전사, 치과의사, 항공관제사 등의 산발적 파업 속에서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28일 테살로니키에서는 1940년 이탈리아군의 침공 저지를 기념하는 국경일 행사로 그리스군의 거리행진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시위대가 거리를 막고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 파나기오티스 베글리티스 국방장관 등을 향해 “반역자”라고 외쳐 행사가 중단됐다. 결국 대통령과 정치인이 떠난 뒤에야 행진이 재개됐다.
그리스 정부의 긴축정책은 돈을 흥청망청 쓴 끝에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이웃 국가들에 “제발 도와 달라”고 애원하며 약속한 최소한의 의무다. 그러나 그리스 국민은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 재정과 정책을 잘못 집행한 정치권이 책임지라”며 고통 분담을 거부하고 있다.
물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도 과감한 구조조정과 과도한 복지 혜택 축소 같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탈세를 죄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사회 전반에 만연한 뿌리 깊은 부정부패에는 국민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 국민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포퓰리즘의 단물을 계속 요구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그런 국민들을 설득할 리더십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게 요즘 그리스의 비극이다.
아테네의 한 교민은 30일 “유흥업소가 밀집한 글리파다 해변가는 요즘도 불야성”이라며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를 하고 정부와 국민이 뭉쳐 위기를 극복했던 한국을 비웃는 나라다. 나라가 완전히 망하기 전까지는 심각성을 못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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