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소녀들이 병원 실수로 부모가 바뀌는 바람에 전혀 다른 종교를 가진 가정에서 자랐다. 뒤늦게 딸이 바뀐 사실을 알게 된 부모들은 아이를 맞바꾸는 대신 마당이 붙은 집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
1일 미국 뉴욕타임스가 전한 기구한 스토리는 1999년 러시아의 소도시 코페이스크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시작됐다. 벨야예바와 이스칸데로바 씨 가족은 15분 간격으로 딸을 출산했다.
이후 12년 동안 각 가정에서 별 탈 없이 자란 두 소녀의 운명에 혼란이 찾아온 것은 올해 초. 벨야예바 씨 부부가 이혼하며 딸의 유전자 검사까지 실시하게 된 것이다. 평소 딸이 자신을 닮지 않았다며 아내의 외도를 의심해 온 남편이 양육비 지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친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경찰 수사 결과 12년 전 출생 직후 병원의 실수로 아기가 바뀐 사실이 밝혀졌다.
진실을 알았지만 난관은 그때부터였다. 벨야예바 씨의 친딸은 이미 이슬람교도인 이스칸데로바 씨 집에서 무슬림으로 커버렸다. 실제론 이슬람 혈통인 아이는 러시아정교회의 독실한 신자로 자랐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에서 두 종교는 서로를 배척한다”며 “부모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정체성에 큰 상처를 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아이들은 처음 사실을 접했을 당시엔 친부모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꼬여버린 운명의 실타래를 푼 건 두 소녀였다. 어렵사리 성사된 만남에서 ‘동병상련’인 그들은 종교를 뛰어넘었다. 소녀들은 “보는 순간 상대의 눈에서 나와 같은 아픔을 봤어요. 그리고 우린 자매보다 소중한 친구가 됐죠”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태도에 감동한 부모들은 그들의 뜻을 반영해 바꾸지 않고 그대로 키우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낭보도 날아왔다. 법원에서 병원 측 부주의를 인정하고 각 가정에 보상금 300만 루블(약 1억1000만 원)씩을 지급하라고 결정한 것. 양가 부모들은 심사숙고 끝에 그 돈으로 마당이 붙은 집 두 채를 샀다. 두 소녀를 함께 키우자는 생각에서였다. 키운 자식과 낳은 자식을 둘 다 언제든 보려는 마음도 있었다.
이교도 집안의 기묘한 동거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소녀들은 친해졌지만 여전히 생부모에겐 거리를 두고 있다. 게다가 부모들도 내심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딸들이 ‘불합리한’ 종교의 신도로 크길 바라지 않는다. 이리나의 어머니 율리야 씨는 “아이들에게 천천히 (종교) 선택권을 주자고 합의하긴 했지만 더 큰 혼란을 겪을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