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식? 이집트식? 리비아식?… ‘중동의 햄릿’ 예멘은 어디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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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년 독재 살레 대통령 권력이양 합의문 서명 이후

《 33년간 예멘을 통치해온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23일 권력 이양 합의문에 서명함에 따라 올해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에 이어 ‘재스민 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네 번째 독재자가 물러나게 됐다. 그러나 다양한 정치적 변수가 도사린 예멘의 미래는 ‘햄릿의 중동 버전’(미국 CNN방송)이라 부를 만큼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예멘발(發) 햄릿은 어떤 결과를 맞을까. 》
① 튀니지 방식?(완전한 정권교체)

걸프협력이사회(GCC)의 합의문이 효력을 발휘한다면 권력을 위임받은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부통령이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해 90일 만에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민주적 절차에 따른 새 정권을 맞이할 수 있다. 이미 1500여 명이나 목숨을 잃었지만 그래도 대규모 내전 없이 권력의 완전한 교체가 가능한 것이다.

현재 이 시나리오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GCC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외부 세계다. 유엔 역시 반기문 사무총장이 합의 직전 살레 대통령과 통화하며 교감을 나눈 사실을 알리면서 적극 후원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신병 치료를 내세웠지만 살레 대통령이 사실상 ‘망명’에 가까운 미국 뉴욕행을 선택해 미국 역시 살레 일가 처벌을 지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번 합의문이 예멘 국민의 정서와 큰 격차를 보인다는 데 불씨가 남아있다. 합의문이 발표된 직후 수도 사나의 ‘변화의 광장’에선 환호성이나 축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② 이집트 방식?(기존 권력이 온존한 상태에서 점진적 민주화)

영국 BBC방송은 “합의 이후 사나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시위대 수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독재시절부터 이번 시위 과정에 이르기까지 숨진 이들의 가족과 동료들이 희생자의 사진을 들고 나와 ‘살레 처단’을 외치고 있다. 살레 대통령이 물러나도 기득권 세력이 권력의 핵심에 그대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 이집트와 엇비슷하다.

CNN방송은 ‘살레 대통령이 합의 당시 왜 흐뭇한 미소를 지었는가’를 분석했다. 1978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그는 초등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중동의 여우’란 별명답게 교묘한 정치적 술수를 갖춘 인물이다. 1994년 내전을 비롯해 남부 분리 독립운동 등 끊임없는 위기에 시달리면서도 포섭과 회유로 권력을 유지해왔다. 올해 시위사태도 내내 숱한 말 바꾸기로 전세를 뒤집으려 시도했다. 이 때문에 이번 합의에서 면책특권은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등지에 숨겨 놓은 막대한 자금까지 유지하게 된 그로선 현 상황만 잦아들면 내심 권력 회복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암울한 경제 상황이 향후 갈등의 씨앗이 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예멘은 2300만 명이 넘는 인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하루 2달러도 벌지 못하는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살레 정권을 지원한 사우디의 지원마저 끊기면 경제적 회복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1994년 내전 이래 분규가 끊이지 않는 땅에서 ‘배고픔’은 소요의 또 다른 기름이 될 수 있다.

③ 리비아 방식?(내전 충돌)


이번 합의의 가장 큰 불안요소는 정부군과 첩보국을 장악하고 있는 살레 대통령의 아들과 조카의 지위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특히 장남 아메드 알리 압둘라 살레가 이끄는 정예부대 공화국수비대는 반정부군을 이끄는 최대 야권세력인 알아마르 가문의 알리 모흐신 알아마르 소장이 지휘하는 제1기갑사단과 시위 기간 내내 여러 차례 충돌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합의문 발표가 있던 당일에도 두 세력은 예멘 북쪽에서 교전을 벌였다. 알아마르 가문은 합의에 대한 특별한 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이번 합의 과정에서 배제된 것에 내심 불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위기그룹(ICG)의 롱리 앨리 중동전문 수석연구원은 “예멘 군부 내 살레 대통령의 영향력이 여전한 데다 알아마르 가문이 야심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며 내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명목상 정권을 승계한 하디 부통령도 불안요소다. 군인 출신으로 국방장관 등을 지내며 군사적 공로는 상당하나 정치적 수완은 검증된 적이 없다. 게다가 AP통신은 “남아 있는 정치권 세력으로선 선택의 폭이 좁아 대선에서 하디 부통령을 새로운 임기 2년 대통령으로 밀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경우 친(親)살레 성향의 그를 야권이나 시민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대로 개혁 의지를 내비치면 자신의 정치기반인 살레 대통령 측과 등을 지게 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24일 사나에서는 살레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해 최소 5명이 숨지고 34명이 부상당했다. 이를 계기로 시위대가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무장 세력까지 수도 전역에 출현하고 있다고 현지인들은 전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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