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카가메 대통령 “한국 보며 ‘우리도 할수 있다’ 희망… 아프리카 IT허브 롤모델로 삼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6일 03시 00분


‘르완다를 지옥에서 건진 인물’…

내전종식-경제재건 주역, 폴 카가메 대통령 방한 인터뷰

《 많은 사람은 ‘르완다’ 하면 1994년 인종대학살(제노사이드)을 떠올린다. 인구의 10%인 100만 명이 죽었으며 산업기반의 70%가 파괴됐다. 다들 ‘르완다는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그 후 17년 만에 이룬 재건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세계은행은 연평균 6%대의 고성장으로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최고이며 세계 20위권의 개혁국가라고 했다. 범죄율은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낮으며 부정부패가 없고 외국인투자를 맡은 공무원들은 24시간 원스톱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은행 선정 ‘비즈니스 하기 좋은 나라’ 순위가 2009년 143위에서 2010년 67위로 뛰었다. 성공의 주역으로 폴 카가메 대통령(54)이 꼽힌다. 빌 클린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그를 “르완다를 지옥에서 건져낸 인물”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지난달 29일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 참석차 두 번째 방한한 그를 출국 전날인 2일 오후 7시 서울에서 만났다. 외교 경제 분야 장관 10여 명과 함께 방한한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비롯해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방문한 뒤 “한국을 롤 모델로 삼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 》
―왜 한국인가.

“50여 년 전 한국은 여타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국민소득이 몇백 달러에 불과한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보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다. 부럽다는 느낌도 있지만 한국이 한 것들을 우리도 하면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는 “특히 정보기술(IT) 분야 강국인 한국을 모범으로 르완다를 동아프리카 IT허브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자원은 없지만 우간다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탄자니아 4개국에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 특성과 대다수 국민이 단일 언어(키냐르완다어)를 쓰고 성인의 70%가 읽고 쓸 수 있다는 장점을 살리겠다는 구상이다.

―기자가 르완다를 방문했을 때(본보 10월 31일자 A1면 참조) ‘인종학살 박물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해골들과 피에 전 희생자들의 옷을 그대로 전시했다. 난자당한 시신들을 미라로 만들어 놓은 곳도 있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무리 부정적인 것이라도 과거는 역사의 일부다. 따지고 보면 나라는 분열되었을지라도 국민은 분열된 적이 없다. 단지 (식민지배 국가에 의해) 분열된 것처럼 보이도록 강제되었을 뿐이다(르완다는 벨기에 식민지였다). 내전 후 우리는 ‘정말 다른가’ ‘다르다 해도 서로 죽이는 일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왜 우리보다 더 다양한 인종, 종족, 문화를 가진 나라들에서는 학살이 발생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졌다. 결국 ‘용서’만이 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용서’는 ‘망각’이 아니다. 르완다에는 희생자, 생존자, 학살자들이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에는 학살자들에 대한 일부 보복이 있었지만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포용했다…사실 대안이 없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마지막 말에선 용서나 화해를 선택한 것이 명분이나 가치를 추구한 결과라기보다 생존을 위해서였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읽혔다.

르완다 소수민족인 ‘투치족’ 출신인 그는 세 살 때 우간다에 난민으로 건너가 30여 년간 난민촌에서 성장했다. 그 후 반정부 게릴라 조직 르완다애국전선(RPF) 사령관이 되어 1994년 내전을 끝낸 주역이 됐다. 186cm의 큰 키에 마른 몸, 뿔테 안경에 나지막한 목소리와 길게 늘어지는 말투는 카리스마를 느끼기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허세 또한 없어 보였다. 군인보다 학자처럼 보였다. 영어가 유창한 그는 르완다 공용어를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바꾸기도 했다.

―내전을 종식시킨 주역이지만 내전을 끝내고 9년 만에 대통령에 출마했다.

“상황이 나를 만든 것이지 내가 현재의 나를 만든 게 아니다. 나는 한 번도 대통령을 꿈꾼 적이 없었다.”

실제로 만나본 르완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권력에 별로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관저에 광케이블을 깔아주기 위해 방문했었다는 주르완다 KT지사 이용완 소장은 “관저와 사저가 너무 소박해 놀랐다”며 “청렴함과 사심 없음이 지지를 받는 비결”이라고 전했다. 2003년 95%의 득표율로 7년 임기 대통령에 당선된 카가메 대통령은 2010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일부 르완다 국민과 국제인권단체는 그가 독재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치적 이견에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이고 반정부 성향 언론사는 폐쇄한다는 것. 지지자들에게만 둘러싸여 있다는 비판도 있다. 기자와 인터뷰가 이뤄지는 과정도 모든 것이 예측불허였다. 인터뷰 시간을 끌다가 당일 전달됐고 외부 사진촬영은 불허됐으며 기자에 대한 수행원들의 검문검색도 심했다.

―한국도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시대가 있었다. 재건과 화합의 과정에서는 무엇보다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지만 때로 ‘독재’라는 비판을 들을 수 있다.

“전시(戰時)에도 다른 생각, 다른 의견이 있었는데 평화로운 상황에서 이견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다른 생각’들을 전진의 힘으로 만드는 것, 그게 좋은 리더라고 생각한다.” 강력한 리더십과 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양날의 칼을 그가 앞으로 어떻게 다룰지 궁금했다. 이 나라는 하루 수입이 1달러 미만인 극빈층이 아직도 전체 인구의 50%에 달하는 최빈국이다. 자원도 없고 사람도 없는(인구 1000만 명) 이 작은 나라가 한국처럼 된다면 ‘또 하나의 기적’이 될 것이다. 이번 부산 원조총회에서 재확인됐지만 지금 세계에는 한국을 닮고 싶어 하는 개도국이 많다. 맞춤형 원조로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면 우리의 친구, 시장(市場)이 될 것이다. 지구촌의 수많은 개도국에 눈을 더 돌려보자.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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