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미국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6층 학장실에서 만난 스티븐 보즈워스 전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지난 2년 8개월 동안 특별대표와 학장이라는 두 가지 일을 했던 그는 “이제 6자회담을 재개할 때가 됐으니 풀타임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물러났다”며
홀가분해했다. 메드퍼드=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09년 2월부터 미 국무부에서 대북정책을 총괄해온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 어떤 대화라도 좋다며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인내심을 잃지 않던 보즈워스 대표는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그는 10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2차 북미 고위급 회담을 끝으로 대북정책특별대표에서 물러났다. 하버드대가 있는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자동차로 10여분 떨어진 곳인 메드포드 시의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6층 학장실에서 6일 보즈워스 전 대표를 만났다.
지난 5월 워싱턴의 국무부 청사 대북정책특별대표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그는 '국무부 고위당국자'라는 익명을 전제로, 그리고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고 조심스럽게 동아일보와 인터뷰에 응했었다. 물론 사진 촬영은 허용하지 않았다. 남북관계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 당시 인터뷰 내내 무거운 표정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듯 딱딱하기만 했던 그의 표정엔 여유가 엿보였다. 인터뷰 간간이 웃음도 터뜨렸다. 집무실 책상에 앉아, 그리고 학장실에 걸린 여러 사진을 배경으로 사진도 여러 장 찍도록 승낙하며 포즈를 취해줬다. 그는 "퇴임 후 한국 언론과 만난 것은 동아일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북정책특별대표를 2년 8개월 동안 맡으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2009년 12월 평양에 가 북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가 가장 흥미로웠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엔 6자회담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죠. 양자협상과 다자협상도 금방 될 것 같았어요. 가장 낙관적인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천안함 폭침사건이 터지면서 모든 것을 다시 불확실한 상태로 되돌려 놔버렸어요."
―아쉽고 어려웠던 부분도 있었을 텐데요.
"이 자리는 일상적인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두고 오바마 정부 출범 후 만들어졌습니다. 내가 이런 역할을 하게 돼 아주 기뻤습니다. 이 자리를 맡아달라고 해서 좋았지만 2년 반이 지난 뒤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특별대표가 정말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국무부와 국가안보회의 등에서 정책 자료를 만들어 냈습니다. 북한 정책을 만드는데 아주 능력이 있는 곳이지요."
―그동안 북한 문제를 다루는데 적잖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과 주한 미국대사를 지내면서 북한 문제를 풀려고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바마 정부 출범 후 첫 달엔 북한에 대한 포괄적인 전략을 짜는데 참여했습니다. 북한 문제를 놓고 정책을 편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습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사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한창 대화가 무르익을 찰나 아니었습니까.
"북한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북한이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어요. 북한을 있는 그대로 놓고 생각을 해야지 앞으로 이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북한에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이 큰 실수를 저질렀어요. 오바마 정부 출범 초기에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협상을 가질 수 있었는데 북한은 이런 기회를 가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왜 천안함을 폭침시켰는지 모르겠어요. 서해가 분쟁지역이고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긴 하지만 정말 북한이 왜 이랬는지 설명하기가 힘들어요."
―김정은 후계체제를 위해서 도발했다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모르겠어요. 북한이 반응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억지로 반응하라고 강요할 순 없잖아요. 북한이 왜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정말 어려워요. 일부에선 향후 권력이동에 대한 내부 정치적인 상황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2012년 북한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정은으로 권력이동이 예정대로 될까요?
"김정은으로 권력이동 계획이 예정돼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권력이 넘어갈 때도 예정된 계획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김정일 후계자로 김정은을 정해놨다는 정도죠. 권력이동이 진행되면 김정은에게 가겠지만 언제 이동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북한 권력승계 과정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은 영향을 받을까요?
"북한이 미국과 한국, 중국의 계획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미국의 대북정책이 영양을 받을 겁니다. 북한이 생산적인 대화를 원치 않으면 결코 생산적인 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랍의 봄' 같은 상황이 북한에도 일어날 가능성은 없을까요?
"북한 상황은 아랍의 상황과는 많이 다릅니다. 북한은 더욱 고립되고 세계의 여론에는 아예 귀를 닫고 있는 나랍니다. 하지만 북한 내부에도 북한 특유의 동력이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들이 나타날 수 있겠지만 내부에서 불만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형태로 표출될지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북한 문제를 다루면서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북한 농축우라늄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북한 문제를 다루면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미국과 한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북한과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이 정말 불쾌하고 못마땅하게 굴더라도 북한과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면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대화는 계속 진행을 시켜야 합니다. 북한이 모든 사람들과 단절하고 대화 채널이 없다면 더욱 무모하고 멍청한 짓을 벌일 수 있습니다. 대화는 아주 중요합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계획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반도의 궁극적인 비핵화를 달성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는 정면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6자회담 재개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이제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있는 상황에 아주 가까이 다가선 상태입니다. 제네바 회담에서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리에서 물러난 상황이어서 그동안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6자회담이 열리면 미국은 무엇에 비중을 둘 계획입니까.
"2005년 공동성명의 실행을 계속 강조할 것입니다. 6자가 원하는 것이 이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비핵화에서부터 평화조약, 외교관계 재개 및 경제적 지원 및 에너지 지원 등이 다 포함돼 있지요."
―중국은 북한에 어떤 입장입니까.
"중국은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6자회담 의장국을 맡으면서 북한과의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중국은 북한이 영구적인 핵무기 보유국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붕괴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6자회담 각국이 자기들만의 특별한 이익이 있지요. 공통의 이해는 비핵화입니다. 6자회담을 재개하는데 필요한 조건과 6자회담이 성공하도록 역할을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북미대화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추가 대화가 곧 있을까요?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추가 대화가 있을 겁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효과적인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초청장을 받는 데까지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북한은 도발 행동을 중단하고 그저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줘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대화가 진전되는 것을 원합니다. 북한도 이에 대한 의지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합니다."
―최근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3차 핵실험 가능성을 거론했던데요. 무슨 근거가 있나요?
"내부 정보나 구체적인 증거를 갖고 얘기한 것은 아닙니다. 북한의 과거 행동에 비춰볼 때 대화가 진행되지 않을 경우 북한은 언젠가는 그런 식으로 행동해왔습니다. 예전에 일어난 것을 갖고 유추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견한 겁니다."
보즈워스 전 대표는 김대중 정부 때인 1997년 12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주한 미대사를 지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생각이 많을 것 같았다.
―한국에선 한미 지유무역협정(FTA)을 놓고 시위가 벌어지고 소란스럽습니다. 반미 감정이 만만찮은데요.
"한미간에는 강력한 협조와 일치의 토대가 돼 있습니다. 간혹 양국 관계에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FTA에 반대하는 시위가 한미관계의 근본을 뒤흔드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고 봅니다. 두 나라가 가능한 신속하고 긍정적으로 FTA를 이행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화를 성 김 주한 미 대사로 돌려보겠습니다. 김 대사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김 대사의 역량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나와는 아주 절친한 친구로 지냈습니다. 김 대사가 지명되고 나서 아주 기뻤어요. 그는 최고의 주한 미대사가 될 겁니다. 서울과 워싱턴이 관계를 강화하고 넓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한미관계는 좋지만요.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도 아주 잘했는데 김 대사가 계속 이어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으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역대 주한 미대사 가운데 최고의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일각에선 한국계 미국인이라는데 대해 걱정하는 시각도 없지 않습니다.
"모든 미대사는 본질적으로 미국인입니다. 김 대사의 배경 때문에 다른 대사들보다 한국인들에게 민감할 수 있습니다만 김 대사를 한국의 미국대사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가 한국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조지 W 부시 정부 말기에 시작된 진전을 계속 추구하겠다는 것이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당시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에 몇 차례 제의도 했지만 나로선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북한은 이 제안들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했으며 나중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까지 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진전을 보이지 못한 것은 모두 북한 책임입니다. 북한은 도발 행동을 하고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지금은 북한이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대화를 하겠다고 합니다. 미국과 한국은 기꺼이 대화를 하겠지만 북한이 2009년 이후 저지른 것에 대해선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북한은 이전의 공동성명이 의미를 가져야 하고 미래의 대화와 협상이 생산적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북한 식량 지원 문제는 어떤 상황인가요.
"미국은 북한 식량지원 문제를 정치와는 별개로 떼 내 생각해왔습니다. 북한은 항상 인구의 몇% 정도는 식량지원이 필요하다는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원된 식량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느냐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감시문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식량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지만 미국은 실제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가는지에 대한 확신이 서야 식량지원에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후임자인 글린 데이비스에게 당부한 말씀이 있습니까.
"꾹 참고 일을 계속해 나가라는 것이 나의 메시지였습니다."
―대북정책특별대표와 플레처스쿨 학장을 겸임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습니까.
"워싱턴과 터프츠대 플레처스쿨에서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오바마 정부에서 이 일을 맡게 된 것은 큰 영광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맡은 일에서 본질적이고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물러날 시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6자회담이 재개되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미국은 이 일에만 매달릴 수 있는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풀타임으로 이 일을 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했습니다. 워싱턴으로 이사하고 싶지도 않았고 플레처스쿨을 떠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이 자리에 아주 전문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도록 맡길 시점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충고할 게 있나요.
"김정일에게 충고한다는 것은 주제 넘는 일입이다. 김정일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누군가 김정일은 절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대화와 협상의 기회를 갖는 것은 김정일에게는 리스크가 아닌데도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그의 이익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북한 문제를 다루는 한국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해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한국은 선진화되고 민주적인 경제를 갖고 있고 국민들의 복지부문에서도 놀랄만한 일을 일궈냈습니다. 한국은 북한을 다룰 때 보다 자신과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은 우월적 상황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아주 도발적이고 저돌적일 수 있습니다. 한국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한국은 경제적인 점에서 뿐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 그리고 국제여론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북한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과 간여하는데(engage) 준비해야만 합니다."
―남북 민간대화가 10월에 조지아대에서 열렸습니다. 민간대화가 필요한가요.
"트랙Ⅱ 대화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정부간 대화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북한의 경우 민간대화나 정부대화에서나 똑 같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북한에서는 트랙Ⅱ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류의 대화가 도움이 되지만 대화에선 협상이 있어야 하고 정부간에 합의가 오가야 합니다."
―민간대화에서 한국 측에서 천안함 폭침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지만 북한은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고 펄쩍 뛰었습니다.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잔인무도한(outrageous) 일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북한은 이런 일들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데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앞으로 계획을 들려주시죠.
"플레처 스쿨은 세계에서 잘 알려진 우수한 학교입니다. 내가 학장을 그만둘 때는 참으로 훌륭한 상태에서 후임자에게 학교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좋은 학생을 유치하고 훌륭한 교수들을 영입하며 국제문제에 적합한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우수한 학생들이 여기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 각국에 여행을 많이 할 생각입니다. 이번 주 후반에 인도와 런던을 갑니다. 내년엔 동북아시아와 남미를 다녀올 생각입니다. 내년에 한국에 가서 플레처스쿨 졸업생을 만날 것입니다. 김구재단과 코리아파운데이션은 플레처스쿨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수개월 안에 플레처스쿨과 한국에 관한 중요한 계획을 발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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