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혁명 촉발 튀니지 청년 분신 1년…혁명은 현재 진행형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9일 09시 58분


아랍민주화 꽃 피워

'한 알의 밀알이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은 적은 일찍이 없었다.'

1년 전인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 중부의 작은 도시 시디부지드에서 과일 노점상을 하던 26세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분신자살했다. 무허가라는 이유로 과일과 좌판을 모두 빼앗긴 뒤 택한 처절한 항거였다. 이것이 오랜 세월 동안 중동·북아프리카를 지배해온 독재의 철옹성을 불태우는 불씨가 될지 그때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부아지지의 1주기인 17일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와 시디부지드에서는 추모 행렬이 잇따랐다. 시민들은 "12월 17일 한 청년이 아랍과 세계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추모했고, 반체제 운동가 출신으로 12일 선출된 문시프 마르주끼 대통령은 "튀니지에 희망을 가져다 준 이 땅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부아지지는 튀니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숱한 청년 실업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리비아에 돈 벌러 건설노동자로 간 아버지는 그가 3세 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와 재혼한 그의 삼촌은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했다.

▼이집트-리비아 등 ‘민주주의 산통’ 계속▼

소년가장이 된 그는 12세 때부터 일을 해야 했고, 6명의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학교도 그만둬야 했다. 군 입대를 자원했지만 실업률이 30%를 넘어서는 시디부지드에서는 군대에 들어가는 것도 힘들었다. 과일 노점상 수입은 월 140달러 수준이었지만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과일을 줬다.

하지만 번번이 노점 철거를 당하고 과일과 좌판을 몰수당했다. 부패한 경찰에게 뇌물을 상납할 형편이 안 됐던 부아지지는 시청에 찾아가 선처를 호소했지만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보이도록 해 주겠다"며 시청 앞에서 몸에 기름을 부은 뒤 불을 붙였다.

그의 분신은 만성적 실업과 독재에 시달려온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불과 28일 뒤인 1월 14일, 23년간 철권통치해온 진 엘아비딘 벤 알리 대통령은 거센 민중의 분노에 쫓겨 망명했다. 재스민꽃의 나라 튀니지의 기적은 무기력하게 독재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던 이웃 나라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며 중동 독재자들의 도미노 붕괴를 이끌었다.

부아지지가 죽은 지 1년, 튀니지 민주주의는 평화적인 총선(10월 23일)을 거쳐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청년실업률 등 숙제는 여전하다. 지난해 말 13%를 기록했던 실업률이 올해는 18.3%에 이르렀다. 청년 실업자 문시프 드리디 씨(28)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혁명 뒤 먹고사는 건 나아진 게 없다"고 개탄했다.

민주혁명을 이뤄낸 이웃 나라들 역시 아직도 후유증을 앓고 있다. 16일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군부 조기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이를 강경 진압하는 군부의 유혈충돌로 9명이 숨지고 300여 명이 다쳤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리비아는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붕괴 후 과도정부 지도자들이 정국을 지휘하고 있지만 여러 분파의 갈등으로 정정불안의 씨앗을 품고 있다. 헐벗고 쪼들리면서도 더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돕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다는 한 청년의 희생으로 열린 새로운 민주주의 실험이 성공하기를 온 세계가 응원하고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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