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거대한 권력이동 중 하나는 서양에서 동양으로의 이동이다. 본질적으로 산업혁명 이전의 국제질서에서 아시아가 가졌던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다.”
국제정치학계의 세계적 석학인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좌교수(74)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아시아”라고 단언했다. 나이 교수는 지난주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구실에서 동아일보와 신년 특별인터뷰를 하고 지난해 두드러지게 나타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아시아 회군’ 정책을 비롯한 국제 정세와 한반도 문제, 미국 대선 등에 대한 견해를 소상하게 밝혔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아시아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는 21세기의 첫 10년을 이라크와 아프간에 얽매여 시간을 낭비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에 집중하는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지역이 아시아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정책은 결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 아닌가.
국의 대중 정책은 중국이 주변의 약자를 괴롭히는 ‘골목대장’이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도록 하려는 게 미국의 목표다. 그래서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불러들였다. 미국이 왜 중국과의 대규모 무역적자를 허용하고 중국 학생 15만 명이 공부하도록 했겠는가. 미국은 한국 일본 등 다른 나라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이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미국의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 미국이 ‘슈퍼파워’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미국은 21세기에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과거에도 미국인들은 미래에 대해 비관적일 때가 있었다. 1950년대엔 소련이 미국보다 크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엔 일본이 급부상했다. 지금은 중국이 떠오르고 있지만 미국에는 여전히 많은 강점이 있다.”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은….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2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 하나는 한반도의 비핵화이고 다른 하나는 국경에서의 혼란을 막는 것이다. 중국은 비핵화보다는 국경에서의 혼란을 더 걱정한다. 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 북한이 무너지면 국경지역에서 혼란이 커지고 중국에 부담이 될 뿐 아니라 미국과 직접적으로 대치해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북한에 대해 자신들이 취해야 할 만큼의 강한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두려워한 나머지 북한에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 왔지만 지금은 이런 태도가 잘못됐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일본의 입지가 비틀거린다는 지적이 있다.
“일본은 여전히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쨌든 3대 경제 강국이고 1인당 개인소득은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일각에서 일본이 쇠퇴할 것이라고 지나치게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스마트파워는 어떻게 평가하나.
“1960년 이후 한국이 이룬 발전은 놀랄 만한 것이다. 아프리카 가나 수준이었던 나라가 지금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주최했다. 경제 분야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고 민주주의 발전 과정도 마찬가지로 급속하게 이뤄졌다. 많은 나라는 한국의 근면과 민주주의로의 변화 과정을 배우고 있다. 경제적인 성취 및 민주적인 정치체제라는 소프트파워와 상당한 수준의 군사력이라는 하드파워를 갖추고 있다.”
―김정일 없는 북한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정은에게 세습하는 것은 ‘공산 군주주의(communist monarchy)’를 뜻한다. 공산주의와 군주주의는 서로 상충하는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김정은이 과연 성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군부와 고위층 리더들이 김정일 사망 후 경험 없는 이 젊은이를 언제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궁금하다. 아버지가 살아있었을 때 김정은은 성공할 수 있었겠지만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이 얼마나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북한이 경제를 개방해 중국 스타일의 개혁을 할지가 주목된다. 하지만 현재 어려운 북한 경제 현실을 감안한다면 외부 세계에 문을 열고 경제개혁을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아랍의 봄’과 같은 사태가 북한에서는 없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이집트나 튀니지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경찰과 군으로부터 억압을 받고 있다. 북한에도 변화의 기미가 보일 수는 있겠지만 아랍의 봄과 같은 급격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랍의 봄은 정보혁명의 결과다. 많은 사람이 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으면서 정보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북한 정책을 평가한다면….
“오바마는 북한에 대해 아주 현실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북한이 존재하고 우리가 이 문제를 다뤄야 하지만 북한 체제가 합법적이라고 인정할 필요는 없다. 오바마는 북한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이 좀 더 강한 입장을 취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는 북한과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란 환상은 가지지 않은 것 같다.”
―그러면 북한 핵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북한 정권이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핵무기는 자신의 권력의 원천이자 정통성의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북한 체제에 변화가 있다면 고립된 핵정책에 의존하는 것보다 외부 세계와 접촉하고 개방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북한이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도발 같은 일을 다시 저지를 가능성은….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북한은 과거에 아주 위험한 행동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렇기 때문에 도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과 한국은 서해상에서 항공모함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하면서 북한의 도발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위험을 무릅쓰는 북한의 행동은 중국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깨닫도록 중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견해는….
젠가는 한반도가 통일될 것이다. 예전에는 한반도 통일 문제에 내가 너무 낙관적이었다. 지금쯤은 통일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세계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변화에 저항했다.”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 중에는 누가 경쟁력이 있나.
“밋 롬니와 뉴트 깅리치다. 다른 후보들은 별 전망이 없어 보인다. 롬니는 외교정책 경험이 없지만 매사추세츠 주지사 경험이 있는 합리적인 성향이다. 그는 전통 공화당의 주류가 될 것이다. 깅리치는 하원 의장을 지내 외교에 경험이 많다. 하지만 그는 논란이 많은 후보다. 두 사람은 예비선거에서 후보로 지명되기 위해 좀 더 중도적인 성향을 추구할 것이다.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롬니가 오바마에게는 버거운 상대가 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될 가능성은….
“미국의 실업률에 달렸다. 실업률이 8.5% 아래에서 머물면 오바마가 재선될 확률이 높다. 지금 상태에서 실업률이 하향 추세를 보인다면 오바마의 재선 가능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오바마는 운이 나빴다. 전임자에게서 아주 형편없는 경제를 물려받았고 전쟁 2개를 이어 받았다. 재정도 형편없었다. 이런 나쁜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미국인을 수렁에서 건져내기 어려웠다.”
케임브리지(매사추세츠 주)=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조지프 나이는 누구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의 뿌리인 ‘스마트파워’ 이론의 주창자.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비핵확산그룹 의장을 맡았고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국방부 차관보와 국가정보위원회 의장을 역임하면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의미하는 하드파워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문화와 가치, 대외원조, 국제교류 등을 뜻하는 ‘소프트파워’를 주창했다. 최근에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조합한 ‘스마트파워’를 강조하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 헨리 키신저 등과 함께 미국 외교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학자로 꼽힌다.
1937년 뉴저지에서 출생해 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을 마쳤다. 이어 하버드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64년부터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70대 중반의 고령에도 최근 ‘권력의 미래(The Future of Power)’를 출간하는 등 연구와 강연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2004년에는 ‘소프트파워: 세계정치에서 성공으로 가는 방법’과 ‘국제분쟁의 이해’ ‘파워 게임’을, 2008년에는 ‘이끄는 권력’이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나이 교수의 이론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공식석상에서 “중국은 소프트파워를 키워야 한다”고 말할 만큼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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