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용이라지만… ‘인간끼리 전염’ 변종 AI바이러스 비상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일 03시 00분


“자연변이 대비” 네덜란드서 만들어… WHO “실험실서 유출 땐 대재앙”
美보건원도 “세부내용 공개 말라”

사람끼리도 조류인플루엔자(AI)를 옮길 수 있는 변종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짐에 따라 국제 보건의학계는 물론이고 선진국 대(對)테러 기관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인류 멸망을 그린 SF 영화에서처럼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괴바이러스가 자칫 대규모 재앙을 불러오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12월 31일 성명을 통해 인간끼리도 AI를 전염시킬 수 있는 변종 H5N1이 실험실에서 탄생한 것과 관련해 “만약 이 연구 결과가 세균전에 이용되거나 일반에게 알려질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H5N1은 AI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앞서 네덜란드 에라스뮈스대 의료센터와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 과학자들은 사람들 사이에 쉽게 전염될 수 있는 변종 H5N1을 유전자 변형을 통해 만들었다. H5N1 바이러스가 자연적으로 변이를 일으켜 인류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전에 변이 과정을 밝혀냄으로써 대비책을 세운다는 목적이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와 ‘네이처’지에 게재하려 했다.

하지만 연구 결과가 세상에 알려질 경우 생물무기 제조 및 국제테러단체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WHO의 수석독감전문가인 후쿠다 겐지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라며 “연구 결과는 너무나 심각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관리 감독돼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생물안보를 위한 국가과학자문위원회(NSABB)’는 연구팀에 이 논문의 일부 내용을 삭제한 뒤에 출간하라고 요청했다. 미 국립보건원도 연구 결과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통상 AI는 감염된 가금류와 접촉하면 걸리며, 사람끼리는 전염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사람 간 전염 사례도 보고된 게 없다. 1997년 H5N1이 처음 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사망자가 343명에 그친 것도 인간끼리 전염되지 않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H5N1 바이러스가 사람끼리도 감염될 수 있도록 변이될 가능성은 2005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WHO는 2005년 5월 보고서에서 “H5N1이 점점 인간 대 인간 감염 쪽으로 변형되고 있다”며 “AI의 세계적인 창궐을 막기 위한 새로운 조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같은 해 6월 베트남 정부도 “H5N1의 항원 구조가 계속 변화하고 있어 인간 감염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발표했었다.

WHO 사무총장을 지낸 고 이종욱 박사도 “AI의 사람 간 전파가 언젠가는 가능하게 될 것이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사태를 맞이하면 그 파급효과가 너무 클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한편 지난해 12월 20일 홍콩에서 AI가 발견돼 비상이 걸린 가운데 중국에서는 18개월 만에 처음으로 AI에 의한 사망자가 발생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31일 중국 광둥(廣東) 성 선전(深(수,천))에서 AI로 39세 남성이 사망했다고 1일 보도했다. 천(陳)모 씨로 알려진 이 남성은 선전의 버스운전사였고 지난해 12월 21일 증세가 나타나 25일 H5N1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 남성과 접촉한 100여 명은 AI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천 씨가 철새들이 많은 인근 습지 공원에서 정기적으로 조깅을 해 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홍콩은 지난해 12월 20일 죽은 닭 한 마리에서 이 바이러스가 발견되자 가금류 도매시장에서 닭 1만7000마리를 도살 처분하는 등 방역을 대폭 강화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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