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푸틴 시위로 러시아 정치체제가 변혁의 기로에 선 가운데 러시아 정교회 고위 지도자들이 민주화를 지지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전통적으로 권력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강력한 정권 지지세력으로 존재해온 러시아 정교회의 정부 비판은 유례가 없는 일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7일 분석했다. 러시아 약 1억4280만 명 국민 중 75%가량이 정교회를 믿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교회의 키릴 총대주교는 7일 “자유시민사회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으며 정부는 저항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정치노선을 수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교회 성탄절인 이날 방영된 유력 TV 채널 ‘러시아-1’과의 인터뷰에서 “당국이 저항에 무감각하면 이는 매우 좋지 않은 징후”라고 지적했다. 키릴 총대주교는 다만 “교회는 어느 편에도 설 수 없다”며 “신자들 가운데는 시위 광장에 있던 사람도 있고 시위대가 비판하는 대상도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시위대에 대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민의 불만을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지혜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시위가 과격화할 것을 우려한 듯 “변화는 바라지만 혁명은 피해야 한다”며 “1917년 혁명 전 벌어진 시위가 평화적으로 끝났다면 러시아는 지금 인구 3억 명이 넘고 경제도 미국을 능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키릴 총대주교의 인터뷰가 나오기 15분 전 모스크바 교구의 브세볼로드 채플린 대주교는 인테르팍스를 통해 발표한 글을 통해 당국을 강도 높게 비판한 후 “시위 후의 러시아는 달라졌다”고 선언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말 알렉세이 우민스키 주교는 “더는 이렇게 못살겠다는 한 가지 마음으로 러시아 광장에 사람들이 모였다”고 ‘반푸틴’ 시위대를 지지했다. 다른 성직자 알드레이 주옙스키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권력자들은 거만할 뿐 아니라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에 대해 결정할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교회 지도자들은 다만 시위대처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거나 체제를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 정교회가 앞으로 정치 개혁의 구심점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으며, 푸틴과 시위대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유명 블로거 알렉세이 나발 리는 정교회에 중재 역할을 요청한 바 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러시아 정교회는 ::
▷종파 독립: 1589년 ▷세계 신도 수: 약 1억5000만 명 ▷러시아 인구(1억4280만 명) 대비 정교회 신도 비율: 약 75% ▷교구: 3만여 개 ▷수도원: 788개 ▷모스크바 및 러시아 총대주교: 키릴(2009년 2월 취임) 자료: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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