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일본 등 주요국에 대(對)이란 제재 동참 압박수위를 높이면서 한국도 이란산 원유 수입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의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가 이란산 원유 수입을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석유업계와 조율 중이라고 전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즈미 준(安住淳) 일본 재무상은 12일 일본을 방문 중인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에게 “국내 사정에 맞춰 이란으로부터의 원유 수입을 계획적, 단계적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이란 대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부터 원유를 조달할 수 있을지 타진하고 있다.
유럽의 정유사들도 이란산 석유 수입을 중단하라는 압박에 따라 이란과 본격적인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고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유럽의 일부 정유사는 계약 불이행 위약금이 있는 기존 계약에 따라 원유를 공급받고 있을 뿐, 이란과 새로운 계약은 하지 않고 있다.
가이트너 장관은 그동안 이란 제재를 반대해 온 중국을 방문해 11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를 차례로 만나 이란 금수조치 동참을 촉구했다.
한국은 이란 제재 수정안 예외조항에 규정된 면제(exception)나 예외(waiver)를 미국에 요청하는 ‘투 트랙’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면제를 받으면 석유 분야를 포함해 포괄적으로 금수조치를 유예받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면제를 받기 위해서는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추상적인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현실적 대안으로 국방수권법 발효 이후 90일 내에 이란산 석유 수입량을 상당 부분 줄이기로 하고 일정 기간 예외를 인정받는 방안이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 핵을 막아 달라고 미국에 부탁하면서 이란 핵 문제에 대한 제재를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며 “이왕 한다면 타이밍도 중요하다. 결정이 늦어져 일본, 중국, 인도를 따라가는 모양새라면 매우 곤란하다”고 말했다.
미국 측과의 협의를 통해 예외를 인정받더라도 이란산 원유의 수입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기름값 상승도 우려된다. 정부 관계자는 “3월까지는 대표단 미국 측 인사를 설득해 보고, 그 결과에 따라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가동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1단계로 대체 원유 수입처를 중동 이외 지역으로까지 확대하고, 2단계로 비축유를 방출하는 단계별 대책을 가동할 계획이다.
이란산 원유를 들여오는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다른 지역 원유보다 배럴당 1∼3달러 싼 이란산 원유의 수입이 줄면 그만큼 수익성이 나빠진다. 배럴당 103달러짜리 이란산 원유를 다른 지역의 106달러 원유로 대체하면 정유업계에 연간 285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거래가 제한되더라도 비축유와 현물시장 거래로 당분간은 버틸 수 있지만 아무래도 공급이 달리고 원가상승 요인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20%로 가장 높은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사태 추이를 지켜보면서 원유 도입처 다변화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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