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의 핵개발이 왜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까.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왜 저토록 이란의 핵개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막으려고 난리칠까.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정말 가능한가. 이란 석유를 못 사오면 정말 석유대란이 나는 걸까. 이란산 석유 금수조치를 둘러싼 진실과 오해를 Q&A로 풀어본다. 》 Q. 해묵은 이란 핵개발 문제가 왜 다시 불거졌나.
A. 이란의 핵개발은 2002년 8월 15일 이란 중부 나탄즈 지역에 비밀 우라늄농축 시설이 존재한다는 폭로가 나온 뒤부터 계속돼 온 지구촌의 두통거리다. 이후 근 10년간 되풀이된 이란과 국제사회의 실랑이는 지난해 11월 8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이 핵탄두 디자인부터 기폭장치 실험까지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얻기 위해 조직적이고 비밀스러운 노력을 기울였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비등점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란의 핵무장 위험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판단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강력한 추가 제재 조치를 밝혔다.
특히 지난해 12월 3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강력한 이란 제재 방안이 포함된 국방수권법에 서명하면서 대치 국면이 본격화됐다. 이 법은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모든 경제 주체가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도록 만든 사실상의 이란산 석유 금수조치다.
Q. 미국은 왜 이란 핵개발 저지에 필사적인가.
A. 이란은 핵무장을 통해 중동의 맹주를 꿈꾼다. 핵보유국이 되면 역시 핵보유국인 이스라엘에 맞선 군사적 대치의 역학관계도 변한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이란의 핵무장은 악몽 그 자체다. 우선 20세기 중후반 이래 세계에 핵무기가 퍼지는 것을 막고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해온 국제체제인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무력화를 불러온다. 또 현 중동의 세력 균형이 완전히 깨지게 된다. 특히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에는 핵무장한 이란은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위협이 된다.
2002년 핵개발이 처음 탄로난 뒤 국제사회와 지루한 시소게임을 벌여온 이란은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군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철수를 준비하는 어수선한 지금이 중동의 패권을 장악할 적기라고 판단하고 핵개발 속도와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세 변화는 올 11월 미국 대선과도 맞물린다. 공화당 후보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이란 외교정책이 무르다고 비판한다. 여당인 민주당마저 강경한 이란 제재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오바마 행정부로선 강경 카드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Q. 미국의 이란 제재는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A. 미국의 국방수권법은 석유 수입 금지를 직접 명시하진 않았지만 이란 중앙은행이 석유 수출 대금을 처리하기 때문에 사실상 석유 금수조치에 해당한다. 이란은 세계 5위의 원유 생산국이자 4위의 석유 수출국이다. 하루 평균 약 35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250만 배럴을 수출한다.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9%를 차지하는 이란에서 원유를 사올 수 없게 되면 세계 각국은 대체 원유 확보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자연스럽게 국제유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란에서 하루 평균 54만3000배럴을 수입하는 중국을 비롯해 일본(34만1000배럴) 한국(24만4000배럴) 등 아시아 국가의 이란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아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산유국들이 증산을 하고, 이란 원유를 수입하던 나라들이 각자 비축해 놓은 전략비축유를 풀면 국제유가는 안정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대체원유의 수송마저 차질을 빚게 돼 현재 배럴당 100달러 안팎인 국제유가는 210달러 안팎으로 치솟아 세계 경제성장률을 3% 아래로 떨어뜨릴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Q.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가능할까.
A. 이론상으로 봉쇄는 가능하지만 현실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해협 입구의 너비(약 34km)가 좁아 물리적으로 봉쇄가 어려운 건 아니다.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이란 해군과 혁명수비대의 미사일·어뢰 요격 능력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 봉쇄는 이란에도 자살 행위에 가깝다. 이란은 원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생필품의 대부분도 호르무즈 해협으로 들어온다. 자국에 우호적인 중국 수출길이 막히는 것도 부담이다. 호르무즈 봉쇄 위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8년 이란과 쿠웨이트 갈등에 미국이 개입하자 이란은 봉쇄를 선언했다. 당시 정유시설 폭격 등 전쟁 양상을 띠었지만 완전 봉쇄는 성사되지 않았다. 전면전이 부담스러웠던 양국은 통행을 묵인하며 갈등을 봉합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란의 노림수는 봉쇄 선언이 주는 심리적 파급효과”라고 지적했다. 세계 원유 교역량의 3분의 1이 지나는 길목에 불안감이 조금만 조성돼도 석유 가격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경제위기를 겪는 유럽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요긴한 협상카드인 셈이다. 하지만 봉쇄가 안 된다고 해도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습 등 국지적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엔 엄청난 파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통신은 “1988년처럼 국지전만 벌어져도 제3차 오일쇼크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Q. 한국은 어떻게 헤쳐가야 하나.
A. 일단 한국과 일본, EU 등은 제재에 동참하기로 했다. 일본은 이란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줄일 방침이다. 유럽은 전면 수입 금지를 선언했으나 6개월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한국은 제재에 동참은 하되 감축폭이나 방식은 상황을 보며 대처한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와 터키는 여러 차례 ‘유엔을 통한 외교적 해결’을 주장해 왔다. 인도도 감축 계획이 없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국은 겉으로는 제재 반대를 얘기하면서도 반사이익을 얻으려 궁리하고 있다. 이란에 원유 가격 할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석유 수출이 금지되면 구매자가 줄어들고, 그나마 석유를 수출하려면 싼 가격으로 팔아야 하는 이란의 처지를 십분 활용하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도 결국은 서방세계 편에 설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제재의 성공은 동북아시아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이란 원유 수출량의 46%를 한국 중국 일본이 수입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특히 22%를 수입하는 중국의 참여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증산을 요청해 대안을 마련하는 한편 중국 국영석유회사를 제재 대상에 올리기도 했다. 채찍과 당근을 함께 쓰는 형국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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