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러-브라질 등 신흥경제대국 국영기업들 세계시장서 맹위
금융위기 속 국가 지원 힘입어 탄탄한 내수 바탕 경쟁력 키위
레닌의 부활은 결코 아니다. 자유시장경제가 종말을 맞은 건 더더구나 아니다. 그러나 태생은 정부의 통제를 받는 국영이면서 글로벌 자본주의의 혜택은 맘껏 누리는 ‘신(新)국가자본주의 기업’들이 21세기 들어 활개를 치고 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20일 보도했다.
사실 국가자본주의는 그다지 신선한 개념은 아니다. 레닌이 사회주의 건설의 토대로 산업 국유화를 주창했을 때 국가자본주의는 사회주의 건설의 전단계로 찬양됐다. 이어 냉전시대에 공산진영이 미국의 영향권에 있는 제3세계 국가를 비난할 때 국가자본주의는 국가와 자본이 결탁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모델로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그러다 1991년 소련 해체 뒤 시장경제가 승리를 선언하며 국가자본주의는 자연스레 역사의 유물처럼 취급됐다.
그러나 국가자본주의는 최근 다시 돌아왔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03∼2010년 세계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의 자본투자 총액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국영기업들로부터 나왔다. 2010년 기준 수익대비 세계 10대 기업 가운데 무려 4곳이 국영이거나 정부가 주도하는 반민영기업이다.
신국가자본주의 시대의 대표주자는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다.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은 자국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의 약 80%를 국영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도 2005년 이후 기업공개(IPO)를 시도한 회사 가운데 15위 안에 중국 국영기업이 5개나 된다.
러시아와 브라질 역시 만만치 않다. 각각 자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62%와 38%를 국영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브라질의 국영기업 비율은 최근 들어 급속도로 높아졌다. 공산국가였던 중국 러시아와 달리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은 21세기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며 민간기업이 운영하던 에너지나 금융 부문을 국가에 귀속시켜왔다. 이를 바탕으로 브라질은 지난해 세계 경제 순위에서 영국을 제치고 6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과 브라질의 선전에 영향을 받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말레이시아 등도 적극적인 국가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붐’처럼 일어난 새로운 국가자본주의는 과거 자본주의 대척점에 섰던 공산주의 계획경제와는 전혀 다르다. 굳이 따지면 ‘하이브리드(이종 혼합)’에 가깝다. 정부가 소유하거나 자본을 댔지만 사실상 자유시장 경제 체제 아래에서 민영기업과 경쟁하는 방식이다.
시기적으로 이들 국영기업은 최근 몇 년간 불어 닥친 글로벌 경제위기의 덕을 많이 봤다. 기존 거대 민영기업들이 부침을 겪는 사이 국가의 비호 아래 최대한 한파를 피하면서 가파른 성장가도를 달렸다.
이코노미스트는 “신국가자본주의가 당분간 위세를 떨치겠지만 결국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흥시장이 선진국을 따라잡으려고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채택하는 것은 유용한 방법이지만 세계시장을 이끌 ‘창의성’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자유시장의 종말’(한국판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저자 이언 브레머 씨는 “이들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자유시장의 이점만 챙겼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글로벌 경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효율성과 생산성 측면에서 약점을 드러낼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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