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체코를 제외한 25개 유럽연합(EU) 회원국이 1월 30일 EU의 재정정책 통합에 한 발 다가서는 신재정협약에 합의하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완벽한 승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유럽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정 건전화를 통한 강력한 긴축정책을 주도해온 메르켈 총리와 독일의 구상이 협약에 대부분 반영됐기 때문이다.
협약의 핵심 내용인 ‘황금률’(재정적자는 GDP의 3% 이하) 위반국에 대한 벌금 부과는 물론이고 황금률의 법제화, 이에 대한 유럽사법재판소(ECJ)의 검증 권한 모두 독일의 청사진이었다. 의회 인준의 어려움 때문에 합류하지 못한 체코도 유로존 가입을 희망하고 있어 추후 협약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최대 주주국인 독일은 이미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에 대한 EU의 구제금융을 지휘하며 방만한 살림에 철퇴를 가해왔다. 낮은 인플레이션과 재정긴축, 엄격한 차입 규제, 수출 주도로 상징되는 독일식 성장 모델은 남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유럽의 대세로 부상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독일을 보라”며 노동시간 늘리기, 기업의 세 부담 축소, 청년 인턴고용 확대 의무화 등 독일식 고용정책을 본뜬 경제 살리기 방안을 내놓았다.
메르켈 총리는 경제 위기에 대한 처방을 놓고 분열상을 노출한 유럽 각국을 다독이는 맏형 노릇까지 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협약을 거부한 영국을 향해 “영국만 외톨이가 될 것” “영국에 남은 산업이 뭐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영국은 EU의 중요한 회원국”이라고 달랬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지난달 30일 재정협약의 운용에 ECJ 같은 EU 기구의 사용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도 메르켈의 노력 덕분이다. 메르켈 총리는 또 대선이 100일도 남지 않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열세에 몰리자 “사르코지 대통령 유세에 참여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하지만 한편에선 EU에 대한 독일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지자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제2의 제국주의 부활’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독일이 그리스에 재정정책 주권을 내놓으라고 제안한 사실이 알려지자 그리스가 즉각 반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아일랜드 하원보다 먼저 독일 의원들이 아일랜드 정부의 예산안을 입수해 본 것으로 알려진 것도 아일랜드에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의 프레드릭 에릭슨 박사는 “독일은 그들이 원하는 경제 모델로 계속 유로존을 압박할 것이며 프랑스는 불확실한 재무능력 때문에 독일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변수도 있다. 프랑스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독-프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긴축보다 경제성장이 먼저”라며 협약의 재협상을 약속했고 독일이 반대하는 유로본드 발행과 ECB의 채권 시장 적극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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