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주로 군림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가 사라진 아프리카에서 영어 사용 국가(앙글로폰)와 프랑스어 사용 국가(프랑코폰) 간에 치열한 주도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1월 30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임기 1년의 아프리카연합(AU) 집행위원장 선거가 끝내 당선자를 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가봉 출신의 장 핑 현 위원장(69)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내무장관 은코사자나 들라미니주마 후보(63)가 맞서 하루 동안 4차례나 표 대결을 벌였으나 유효 득표자(회원국 3분의 2)가 나오지 않았다. 이에 따라 현 위원장 임기가 6월 말라위에서 열리는 차기 정상회의까지 연장됐다고 로이터통신이 31일 전했다.
이는 AU 창설을 주도하고 막대한 리비아 오일머니를 투입함으로써 막강한 지도력을 행사했던 카다피가 사망하면서 구심점이 사라진 것이 큰 요인으로 꼽힌다. 아프리카는 과거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배의 유산으로 앙글로폰과 프랑코폰 국가로 나뉘었으며 경제적 격차 등으로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콩고 가봉 니제르 코트디부아르 등 프랑코폰 국가들은 대체로 경제발전 속도가 더디며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반면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가나 케냐 탄자니아 등의 앙글로폰 국가들은 비교적 자본주의가 발달했다.
이들의 경제발전이 차이가 난 것은 식민 모국의 지배 방식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이 현지인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기술을 전수해 자치 능력을 키운 반면 프랑스는 프랑스인을 각 국가의 요직에 배치함으로써 현지인들의 자립도가 낮았다는 것이다.
경제적 격차를 무마하기 위해 프랑코폰 진영이 택한 방법은 정치적으로 의제를 선점하는 것이다. AU 집행위원장 자리를 쉽게 내주지 않으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주의연구센터 스티븐 프리드먼 정치 분석관은 “(가봉 등 프랑스어권 국가들이) 상대편에 대해 상당한 공포심과 분노를 느끼는 듯하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카다피 이후 첫 회의에서 AU는 극심한 분열상을 노출했다. 이에 따라 2002년 7월 AU가 출범할 때 내세웠던 ‘서방에 맞서 아프리카 문제를 아프리카 식으로 해결하자’는 원대한 목표는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서방 등 외세에 한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지역 내 현안에서도 통일된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10년 전 출범 당시 54개 회원국이 꿈꿨던 ‘아프리카 르네상스’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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