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보면 쏴라” 언론인의 무덤 시리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4일 03시 00분


■ 용기 있는 기자들 잇단 희생

“아니다. 반드시 끝내야 할 중요한 기사가 있다.”

21일 시리아 반군의 거점인 북부 홈스에서 취재 중이던 선데이타임스의 기자인 마리 콜빈 씨(55)는 담당 편집인으로부터 “상황이 위험하다. 당장 철수하라”는 긴박한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하루만 더 있다 떠나겠다”고 말했다. 이튿날인 22일 콜빈 씨는 자신이 머무르던 시내 중심가 바브알마르의 임시 미디어센터에 쏟아진 우박 같은 포탄에 목숨을 잃었다.

○ 인류애에 불탔던 여전사


1999년 동티모르 수도 딜리. 동티모르 독립에 반대하는 민병대의 학살을 두려워 한 주민 1500여 명이 피신해 있던 유엔사무소를 인도네시아군이 포위했다. 유엔 관계자들은 난민들에게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당시 이곳에서 취재 중이던 콜빈 씨는 “어떻게 유엔과 세계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들을 사지로 내모느냐.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항의했다. 유엔의 요청을 받고 이들을 체포하러 왔던 인도네시아군도 결국 콜빈 씨의 말에 주민들이 안전하게 떠나도록 허락했다. 당시 콜빈 씨의 용기가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해냈다고 영국 언론들은 전했다.

미국 뉴욕 출신인 콜빈 씨가 언론인의 꿈을 갖게 된 것은 예일대에서 문학을 전공하던 시절 대학신문사에서 일하면서였다. 졸업 후 UPI통신의 뉴저지와 파리 지국 등을 거친 그는 1986년 영국 더타임스의 일요판 신문인 선데이타임스의 특파원으로 리비아 트리폴리 현장으로 간 후 남은 인생을 종군기자로 살기로 결심한다. 당시는 미국이 로마와 서베를린 폭탄테러 사건의 책임을 물어 리비아에 베트남전 이래 최대의 공습을 감행했을 때다.

이후 그는 이란-이라크전쟁, 걸프전,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 코소보 내전, 체첸 분쟁, 스리랑카 내전, 그리고 지난해 아랍의 봄의 이집트와 리비아까지 지구촌의 갈등과 분쟁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났다.

체첸 내전 때는 한겨울에 반군과 함께 8일 동안 1m가 넘는 눈으로 뒤덮인 4000m의 험준한 산을 넘어 산소 부족에 끼니까지 거르며 그루지야(현 조지아)로 탈출하기도 했다. 2001년 스리랑카 내전 취재 때는 수류탄 공격을 받아 왼쪽 눈과 청력 일부를 상실했고 머리 속에 남은 파편의 일부는 결국 제거하지 못했다. 지난해 그는 25년 동안 친분을 쌓아온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와의 만남을 ‘미친 개와 나’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22일 홈스에서 콜빈 씨와 함께 숨진 프랑스의 사진기자 레미 오클리크 씨(29)는 지난주 시리아에서 철수했다가 다시 홈스로 들어간 지 하루 만에 변을 당했다.

○ 극에 달하는 국제사회 분노


지난달 11일 프랑스2TV의 질 자키에 카메라기자가 시리아 정부의 허가를 받고 취재 중 숨진 데 이어 22일 기자 2명이 또 사망해 시리아가 언론인의 무덤이 되고 있다. 반정부군 관계자는 AFP통신에 “두 기자의 시신을 보내려고 하는데 상황이 어렵다”고 전했다. 같은 날 3명의 외국 기자도 부상했는데 프랑스 르피가로의 에디트 부비에 특파원은 다리에 중상을 입어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리베라시옹지의 장피에르 페랭 특파원은 “얼마 전 ‘시리아군이 홈스의 프레스센터를 공격할 계획이며 외국인 기자를 보면 죽일 것이니 빨리 떠나라’는 경고를 받고 콜빈 씨와 함께 떠났다”며 “그런데 공격이 없자 콜빈 씨는 프레스센터로 돌아갔다가 변을 당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시리아 땅을 밟은 기자는 누구든 죽이고 테러집단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것처럼 하라는 시리아군 장교들의 통신내용이 유출돼 외국 보도진에 전해졌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리아군이 계획적으로 외국 기자를 공격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 밖에 시리아 상황을 외국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시리아인 기자 3명도 최근 사망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취재진의 피폭 사망에 대해 “시리아 정부의 암살이다. 이제 충분하다. 아사드 정권은 사라져야 한다”고 비난했다. 빅토리아 뉼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 비극적 사건은 알아사드 정권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단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말했다. 이에 아드난 마흐무드 시리아 정보장관은 “숨진 두 기자가 시리아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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