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부모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민주당 정부에서 매달 1만∼1만5000엔씩 지급하던 어린이 수당이 다음 달부터 확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황당하다. 이달 말까지 개정하기로 한 관련 법안 이름을 ‘아동수당(兒童手當)’으로 할 것이냐, ‘아동을 위한 수당’으로 할 것이냐를 놓고 여야가 끝까지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불발되면 어린이 수당은 월 5000∼1만 엔씩 지급되던 과거 자민당 집권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사연은 이렇다.
일본 민주당은 2009년 총선에서 전후 54년간 이어진 자민당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그 원동력은 널리 알려진 대로 어린이 수당,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 휘발유세 폐지 등 3대 복지 공약이었다. 국민들은 민주당의 장밋빛 복지 공약에 열광했고 표를 몰아줬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판명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라 곳간이 비어 재원을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월 2만6000엔씩 주겠다던 어린이 수당을 2010년 6월이 돼서야 절반만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마저도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작년 7월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는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며 어린이 수당 지급액을 기본 월 1만 엔으로 또 줄였다. 야당과는 어린이 수당 지급 대상에 소득제한을 두는 등 관련 법안을 전면 손질해 올해 4월부터 새로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굴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민주당은 어떻게든 ‘어린이 수당(子供手當)’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어린이를 위한 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새 법안을 내놓았지만 야당이 발끈했다. 민주당의 핵심 공약이 ‘사기’였던 만큼 자민당 집권 시절의 ‘아동수당’이라는 이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민주당은 ‘어린이’라는 표현은 포기한 채 궁여지책으로 ‘아동성육(成育) 수당’, ‘아동을 위한 수당’ 등 새로운 이름을 줄줄이 내놓았지만 야당은 완전 항복을 요구하며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법안 제출 마감시한이 다가온 것이다.
민주당의 굴욕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복지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 한국 정치권과 국민에게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아닐 수 없다. 장미에는 가시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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