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銀, 개도국 자금지원 넘어 시스템 개선 나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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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6일 03시 00분


■ 金취임 이후 역할변화 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세계은행(WB·공식 명칭은 국제부흥개발은행으로 IBRD) 차기 총재로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지명한 것을 계기로 66년 역사를 지닌 세계은행의 새로운 시대가 예고되고 있다. 특히 금융인이나 고위관료 또는 의원 출신이 차지했던 이 자리에 처음으로 의학 분야의 학자가 지명된 사실이 변화를 촉진할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WB는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1944년에 전후(戰後) 세계경제의 골격을 짠 브레턴우즈협정의 결과로 탄생한 국제경제 및 금융시스템을 책임지고 있는 양대 국제기구다. WB, IMF와 함께 세계 3대 국제기구 중 하나인 유엔이 실질적인 정책도구가 없는 데 비해 WB와 IMF는 ‘돈’을 갖고 있어 어찌 보면 한 국가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총재 지명은 WB의 역할이 서서히 변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IMF가 단기자금 지원을 주로 한다면 WB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장기 대출자금을 지원해 왔다. ‘IBRD 차관’으로 불리는 이 자금들은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도로 등 국가 인프라와 생산공장을 짓는 데 사용돼 왔다. 따라서 총재는 어떤 형태로든 경제와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 차기 총재 지명자는 이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이력을 갖고 있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 출신이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에이즈 담당 국장을 지낸 게 그나마 그의 외도였다.

김 총장의 지명으로 앞으로 WB가 기존의 자금 지원과 함께 의료 지원, 생활환경 개선 등의 사회시스템 개선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서울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개발도상국의 지원을 위한 ‘서울 어젠다’를 발표했던 주최국 한국도 이 같은 WB의 역할 변화를 주문한 바 있다. 이번 총재 지명은 국제기구 지배구조의 변화에도 촉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WB는 미국인이, IMF는 유럽인이 총재를 맡는 게 관행으로 돼 있었다. 제도적으로도 미국의 주도권은 확실하다. WB 총재가 되려면 85%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미국이 15.85%의 지분을 갖고 있다. 미국이 반대하면 누구도 총재가 될 수 없는 구조다.

하지만 국제기구의 ‘캐스팅 보트’로 부상한 중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브릭스(BRICs) 국가들의 입김이 계속 커지고 있어 미국도 이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WB 지분 구조에서 미국, 일본(6.84%)에 이어 3번째인 중국(4.42%)을 비롯해 인도(2.91%·7위) 러시아(2.77%·8위) 등의 브릭스 국가들은 이번 총재 선임 과정에서도 미국이 독차지하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항의했다. 결국 미국이 아시아계 미국인이란 묘수를 쓰면서 이들 국가를 달랬다는 분석이다.

워싱턴에 본부가 있는 세계은행의 직원 수는 2011년 기준 약 1만2000명이며 한국인은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에서 파견된 20명을 포함해 총 6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김용#세계은행#오바마#W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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