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예술 자존심, 불황에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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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7일 03시 00분


문화부 없애고… 지원금 줄이고…

유럽의 정통 예술이 경제위기로 위축되고 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오페라 발레 미술 오케스트라 등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지만 재정난으로 인해 각국 정부가 지원을 줄이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오페라극장 ‘라 스칼라’. 23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이 극장은 ‘오셀로’와 ‘나부코’ 등이 초연된 곳으로 전 세계 성악가들의 꿈의 무대다. 하지만 ‘라 스칼라’는 이탈리아 정부의 보조금 삭감으로 올해 약 900만 달러(약 102억6900만 원)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4일 전했다. 네덜란드는 내년부터 문화계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25% 줄일 예정이며 포르투갈은 아예 정부 부처에서 문화부를 없애 버렸다.

독일과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원 축소로 특히 중소 예술단체가 큰 타격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 정부는 “예산이 줄어든 만큼 질이 높은 곳에 효율적으로 사용하겠다”는 방침 아래 반 고흐 박물관,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국립발레단처럼 규모가 큰 곳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실험적이고 이름이 덜 알려진 예술단에 대한 지원은 줄였다. 한 예술단은 배우 8명이 출연하는 연극의 대본을 인건비 절감을 위해 3명이 출연하는 내용으로 바꿨다. 작곡가들은 아예 곡을 만드는 단계에서 연주자 규모를 줄이는 아픔을 겪고 있다.

재정난으로 미국 순회공연을 포기하는 예술단체도 속출한다. 1월 뉴욕에서 열린 연극축제 ‘언더 더 레이더’에는 3개 유럽 극단이 교통비와 체재비를 감당할 수 없어 참가를 취소했다.

일부 극작가와 배우 등은 미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뉴욕의 복합 문화공간인 링컨센터가 주관하는 예술행사에서 공연 기회를 얻으려고 백방으로 뛰는 유럽 출신 예술인이 부쩍 늘었다. 일부 유럽 예술인들은 미국 내에서 개인 기부자를 물색하고 있지만 상업성이 보장되지 않는 순수예술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미국적 풍토 때문에 낙담하고 있다.

미국 음악축제인 스폴레토 페스티벌의 나이절 레든 감독은 “경제난의 여파로 예술의 다양성과 실험정신, 인재 양성이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게 됐다”고 우려했다. 오스트리아의 문화예술활동 지원단체인 ‘문화포럼’의 안드레아 스태들러 사무총장은 “문화는 정치적 이슈보다 더 상위에 놓인 개념이며 우리의 정체성과 연결된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문화#유럽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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