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청 높이는 브릭스 “별도 개발은행 창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30일 03시 00분


■ 5개국 뉴델리서 4차 정상회의

미국 등 서구 중심의 세계경제 질서에 도전하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들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을 견제할 자체 개발은행의 창설을 추진하는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세계 인구의 43%,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2%를 차지하는 브릭스 5개국은 29일 인도 뉴델리에서 4차 정상회의를 갖고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한 가칭 ‘브릭스은행’ 창설 계획을 채택했다. 또 IMF 개혁의 속도를 더 높일 것을 요구했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기존 국제기구들이 신흥국과 개도국의 발전을 돕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브릭스는 개도국과 신흥국이 자본을 출연하고, 직접 운영하는 은행을 설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브릭스 정상들은 회원국 재무장관들에게 은행 설립 계획을 마련해 2013년 남아공에서 열리는 차기 정상회의에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AFP통신은 브릭스 국가들이 자체 은행 창설을 추진하는 것은 브릭스가 가진 경제력을 집단적 외교력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브릭스은행의 파워가 커지면 브릭스의 지도국인 중국의 영향력이 특히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브릭스 정상들은 이날 회의에서 이란 및 시리아 사태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개입에 반대한다며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릭스는 자체 개발은행 창설 외에도 현재 2300억 달러 규모인 역내 무역규모를 2015년까지 5000억 달러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투자자가 환율 위험에서 벗어나 브릭스 역내 주식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키로 하는 등 증시 협력 강화에도 합의했다.

또 브릭스는 “세계은행 차기 총재가 투명한 절차를 거쳐 선출돼야 한다”고 강조해 미국 측 지명 인사가 자동적으로 임명되는 지금까지의 관행에도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차기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이 지명한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이 선출될 것이 확실시되지만,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 전 콜롬비아 재무장관,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나이지리아 재무장관 등도 출사표를 낸 상태다. 브릭스는 이번 회의에서 콜롬비아와 나이지리아 후보 간 단일화에 합의하지 못했다. 총재 선임에는 세계은행 지분 85%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미국이 15.85%의 지분을 갖고 있어 미국이 반대하면 총재가 될 수 없는 구조다.

2009년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4개국 모임으로 출범한 브릭스는 지난해 남아공이 합류하면서 5개국 모임으로 확대 개편됐다. 인도와 브라질, 남아공은 민주주의 체제인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등 정치 경제 구조에서 이질적인 모습을 띠고 있어 결속력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황야성 교수(국제경제)는 “서구 중심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 브릭스 국가들을 뭉치게 하는 유일한 구심점”이라며 “브릭스는 정책 모임이 아니라 사진이나 찍고 헤어지는 행사”라고 비판했다. 인도의 전략분석가인 라자 모한 씨는 중국과 인도가 국경 분쟁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문제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처리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인도 간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브릭스 회의의 내용은 제한된 힘밖에 갖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미국#브릭스#IMF#세계은행#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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