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교체기 中 ‘만만한 자금성’?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6일 03시 00분


후진타오 재산 공개 요구하고… 원자바오 금융개혁 반발하고

“후진타오(胡錦濤)가 앞장서서 재산을 공개하라.”

최근 중국에서 최고지도자를 직접 거명하며 당국이 추진하는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당내 핵심층 간의 내부 비공개 토론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생한 뒤 나중에 알려지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올가을 권력교체를 앞두고 최고 권력층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광둥(廣東) 성 광저우(廣州)에서 20, 30대 9명이 정치개혁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5일 보도했다. 이들은 팻말과 인쇄물 등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팻말에는 ‘후진타오 먼저 재산 공개’ ‘투표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 ‘평등 정의 자유 인권 법치 민주’ 등이 적혀 있었다. 시위는 시민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시위대 가운데 중산(中山)대 학생 1명과 인권운동가 1명 등 최소 2명은 공안에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 토지 보상 등 민원 시위는 잦지만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후 주석을 직접 거명하면서 공직자의 재산 공개를 요구한 것은 거의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중국 정부는 공직자 재산 공개를 뿌리 깊은 부패를 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보고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용하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지난해 이 제도를 확대 실시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공직자의 재산 공개 요구는 최고지도부까지 겨냥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달에는 약 180명의 누리꾼이 연대서명으로 최고지도자들이 재산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석가들은 특권계급 간에 복잡하게 연결된 이익관계 때문에 재산 공개가 이뤄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원 총리가 강력한 추진을 천명한 정책에 사실상 공무원인 대형 국영기업 간부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도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원 총리는 3일 대형 국영은행의 독점 구조를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국영은행 고위 인사는 “이 발언은 공평하지 않다고 본다”며 “우리는 정부가 시키는 대로 국영기업 등에 자금 공급을 충실히 해 왔을 뿐”이라고 반발했다.

이 인사는 원 총리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은행의 전체 지형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 총리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국영은행을 포함한 국영기업과 정부의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국영기업의 경영진은 사실상 정부 관료이고 일부는 부부장(차관)급이다. 국무원 산하 발전연구중심의 우징롄(吳敬璉) 박사도 “당국이 국영기업의 산업 독점을 깨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원 총리와는 다른 시각을 나타냈다.

로이터통신은 “5대 국영은행 관계자는 원 총리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변화가 곧 뒤따를 것이라고 우려하지 않고 있다”고 4일 전했다. 한 국영은행 간부는 “원 총리는 임기가 1년 남았기 때문에 국영은행 개혁은 차세대 지도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중국#후진타오#원자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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