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지도층 ‘국가자살론’ 확산… “거함 일본號는 스스로 무덤으로 가고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8일 03시 00분


‘신용강등→연금-고용 파탄’ 보수誌 망국 시나리오 화제
“원전 가동중단은 집단자살” 前관방장관 발언도 논란

‘일본의 자살’ ‘신(新)일본의 자살’….’

일본의 사회지도층이 자살론 전염병에 빠졌다. 문제를 해결할 리더십을 상실한 일본이 이대로 가면 스스로 망한다는 것이다. 현재 제기되는 자살론은 웬만한 충격요법으로는 변화가 없는 ‘퇴적 사회’ 일본의 극약처방이자 심각한 위기의식의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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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시사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5월호는 ‘신(新)일본의 자살’이라는 논문에서 일본의 국가 파탄 시나리오를 사실감 있게 묘사했다. 주요 내용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권이 소비세 증세안 도입에 실패하면서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연금 고용 파탄이 이어져 일본이 ‘무간지옥’(無間地獄·불교에서 말하는 고통이 가장 극심한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연금이 삭감되면서 노인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재정파탄 책임자를 A급 전범으로 잡아들이는 살벌한 시나리오도 묘사됐다. 이 논문은 익명의 이코노미스트, 관료, 사회심리학자들이 공동 작성한 것으로 정재계에서 복사해 돌려보는 등 화제가 되고 있다.

분게이슌주는 일본이 고도성장의 정점에 있던 시절인 1975년 2월호에도 ‘일본의 자살’이란 논문을 실은 바 있다. 고대 로마인이 ‘빵과 서커스’를 손에 넣었을 때 번영과 복지의 절정에 도달했다고 착각했으나 이 순간부터 증대하는 복지비용과 빗나간 평등주의, 사회 활력 저하와 중우정치(衆愚政治)의 범람 속에 로마는 자살하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필자들은 로마의 자살 메커니즘이 일본에서도 똑같이 시작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논문은 37년이 지난 올해 초 진보 성향의 아사히신문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주필이 ‘내일의 사회에 책임을 갖자-일본의 자살을 걱정한다’는 신년 칼럼에서 재인용했다. 보수든 진보든 일본 지도층의 위기의식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민주당의 정조회장 대행인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전 관방장관도 16일 “모든 원전의 가동 중단은 일본의 집단자살”이라고 말해 논란을 촉발했다. 다음 달 5일이면 일본은 전체 54기의 원전이 멈추는 ‘원전 가동 제로’ 상태가 되는데 재가동에 무조건 반대하는 세력 때문에 일본의 경제와 생활에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집단자살’이라는 용어를 입에 올린 것이다.

자살론으로 대변되는 일본 지도층의 위기의식은 곳곳에 투영되고 있다. 일본 경단련(經團連)의 21세기정책연구소 모리타 도미지로(森田富治郞) 소장은 ‘2030년대부터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한국에 역전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16일 내놓고 “이대로는 일본이 극동아시아의 한 소국(小國)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의 아침 방송들은 17일 이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분위기는 한국에 이미 역전된 것 아닌가”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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