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쇼생크 탈출’ 中 통치시스템을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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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일 03시 00분


■ 내정 문제로 비화 조짐

천광청 씨를 지지하는 내용의 스티커. 미국 인권선교단체 중국구호협회가 만든 것으로 ‘천광청(CGC)을 자유롭게 하라’고 쓰여 있다. 사진 출처 중국구호협회
천광청 씨를 지지하는 내용의 스티커. 미국 인권선교단체 중국구호협회가 만든 것으로 ‘천광청(CGC)을 자유롭게 하라’고 쓰여 있다. 사진 출처 중국구호협회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 씨의 중국판 ‘쇼생크 탈출’이 중국 내정 문제로 비화할 조짐이다. 보시라이(薄熙來) 사태로 통치 시스템의 균열이 드러난 상황에서 또다시 현 지도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형 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일 천 씨 사건이 ‘천라지망(天羅地網·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그물)을 자랑하는 중국 치안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가택연금 중이던 시각장애인이 70여 명의 공안을 뚫고 밤길을 달려 570km 떨어진 베이징(北京)의 미국대사관까지 갔을 뿐만 아니라 그를 도와준 후자(胡佳) 씨 역시 당국의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이징에서는 천 씨가 탄 차량과 공안 간의 추격전까지 있었다고 한다.

해외의 반중(反中) 매체들은 좀 더 노골적이다. 미국에 본부를 둔 신탕런(新唐人)은 “이번 사건이 치안과 사법을 총괄하는 저우융캉(周永康) 정법위 서기 겸 정치국 상무위원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고 전했다. 저우 위원은 보시라이를 비호하다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는 소문이 이미 돌고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정법위의 기강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 있고, 이 경우 공산당의 3대 계파 중 하나인 상하이방의 핵심인 저우 위원의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홍콩의 일부 언론도 ‘천광청 사태의 화살이 저우 위원을 향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의 후폭풍에 주목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탈법을 통제하지 못하는 중앙정부의 무기력함도 도마에 올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지도부는 이 사건의 발단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 씨가 고발한 산둥(山東) 성 린이(臨沂) 시의 강제 낙태 시술은 엄연한 불법이었지만 성 정부는 천 씨를 범죄자로 취급해 구금했고, 천 씨가 출소한 뒤인 2010년에는 이유 없이 가택연금 조치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외국 인권단체들이 크게 반발했지만 중앙정부의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보시라이 사태도 마찬가지다. 보시라이는 충칭(重慶) 시 당서기로 있으면서 5년간이나 중앙의 정책 방향과 전혀 다른 노선을 추구하며 전횡을 저질렀지만 당 지도부는 최근까지도 손을 놓고 있었다.

한편 허난(河南) 성의 에이즈 만연 실태를 고발한 여성 운동가 가오야오제(高耀潔) 씨도 우이(吳儀) 국무원 부총리 등의 지지를 받았지만 지방정부의 탄압을 견디다 못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앙정부가 천 씨를 만나 요구조건을 청취하고 산둥 성 관리들을 조사해 중앙정부의 권위를 확인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이 강경파 대 개방·개혁론자 간의 대립으로 옮겨 붙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뉴욕타임스는 복수의 외교관을 인용해 “저우 위원 등 대미 보수 강경파는 이번 사건을 보시라이 실각 이후 통치 권력이 취약해진 시기에 의도적으로 중국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천 씨 등 인권운동가들이 미국과 짜고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강경파의 반격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경우 친서방으로 분류되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궁지에 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내부 노선투쟁이 점화되면 보수 강경파들은 자기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서라도 천 씨의 신병을 중국에 넘기라고 미국에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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