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 씨의 중국판 ‘쇼생크 탈출’이 중국 내정 문제로 비화할 조짐이다. 보시라이(薄熙來) 사태로 통치 시스템의 균열이 드러난 상황에서 또다시 현 지도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형 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일 천 씨 사건이 ‘천라지망(天羅地網·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그물)을 자랑하는 중국 치안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가택연금 중이던 시각장애인이 70여 명의 공안을 뚫고 밤길을 달려 570km 떨어진 베이징(北京)의 미국대사관까지 갔을 뿐만 아니라 그를 도와준 후자(胡佳) 씨 역시 당국의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이징에서는 천 씨가 탄 차량과 공안 간의 추격전까지 있었다고 한다.
해외의 반중(反中) 매체들은 좀 더 노골적이다. 미국에 본부를 둔 신탕런(新唐人)은 “이번 사건이 치안과 사법을 총괄하는 저우융캉(周永康) 정법위 서기 겸 정치국 상무위원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고 전했다. 저우 위원은 보시라이를 비호하다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는 소문이 이미 돌고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정법위의 기강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 있고, 이 경우 공산당의 3대 계파 중 하나인 상하이방의 핵심인 저우 위원의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홍콩의 일부 언론도 ‘천광청 사태의 화살이 저우 위원을 향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의 후폭풍에 주목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탈법을 통제하지 못하는 중앙정부의 무기력함도 도마에 올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지도부는 이 사건의 발단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 씨가 고발한 산둥(山東) 성 린이(臨沂) 시의 강제 낙태 시술은 엄연한 불법이었지만 성 정부는 천 씨를 범죄자로 취급해 구금했고, 천 씨가 출소한 뒤인 2010년에는 이유 없이 가택연금 조치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외국 인권단체들이 크게 반발했지만 중앙정부의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보시라이 사태도 마찬가지다. 보시라이는 충칭(重慶) 시 당서기로 있으면서 5년간이나 중앙의 정책 방향과 전혀 다른 노선을 추구하며 전횡을 저질렀지만 당 지도부는 최근까지도 손을 놓고 있었다.
한편 허난(河南) 성의 에이즈 만연 실태를 고발한 여성 운동가 가오야오제(高耀潔) 씨도 우이(吳儀) 국무원 부총리 등의 지지를 받았지만 지방정부의 탄압을 견디다 못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앙정부가 천 씨를 만나 요구조건을 청취하고 산둥 성 관리들을 조사해 중앙정부의 권위를 확인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이 강경파 대 개방·개혁론자 간의 대립으로 옮겨 붙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뉴욕타임스는 복수의 외교관을 인용해 “저우 위원 등 대미 보수 강경파는 이번 사건을 보시라이 실각 이후 통치 권력이 취약해진 시기에 의도적으로 중국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천 씨 등 인권운동가들이 미국과 짜고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강경파의 반격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경우 친서방으로 분류되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궁지에 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내부 노선투쟁이 점화되면 보수 강경파들은 자기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서라도 천 씨의 신병을 중국에 넘기라고 미국에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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