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한 그리스 정국이 시계제로 상황에 빠지면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그리스의 탈(脫)유로’를 뜻하는 이른바 ‘그렉시트(Grexit)’ 모드로 돌아서고 있다.
우선 유로존 이탈 발언을 금기시해 온 유로존 중앙은행장들이 일제히 그리스 퇴출 가능성을 공개 언급했다. 국제사회가 이미 그리스 탈유로를 기정사실화하고 이에 대비한 ‘플랜B’에 들어갔다는 전망도 쏟아지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14일 최신호에 ‘아듀, 그리스’를 커버스토리로 다뤘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리스, 유로 탈퇴 이후’라는 기획시리즈를 시작할 정도다. 이런 전망이 현실화되면 1999년 유로존 출범 이후 13년 만에 첫 유로 이탈 국가가 나오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위원인 뤼크 코엔 벨기에 중앙은행장은 14일 FT와의 인터뷰에서 “필요하다면 그리스와 원만하게 ‘이혼’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렉시트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다. 패트릭 호노한 아일랜드 중앙은행장도 “그리스 탈퇴가 다른 회원국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주겠지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리 렌 유럽연합(EU) 경제통화담당 집행위원은 “유럽이 2년 전보다 그리스 이탈 가능성에 훨씬 더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FT는 “특히 유로존이 위기 때 국공채 매입, 은행 자본 투입 등에 쓸 구제금융 재원을 5000억 유로로 확대했으며, 스페인 이탈리아 등도 신용경색 등을 대비한 비상대책을 마련하면서 EU 내에 그리스 이탈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EU의 고위관료는 “2년 전이라면 그리스 탈퇴는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맞먹는 대재앙이었고, 1년 전만 해도 은행 줄도산을 가져올 엄청난 위험이었지만 지금은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FT는 향후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이끄는 그리스 새 정부가 EU 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와 합의한 긴축 및 구조조정안을 ‘고의적으로’ 거부하면서 탈유로의 방아쇠가 당겨질 것으로 전망했다. 씨티그룹 빌럼 바위터르 경제분석가는 “그리스 유로 이탈은 타의가 아닌 자의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FT는 유로존 탈퇴 이후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그리스는 가장 먼저 옛 화폐인 ‘드라크마’를 부활시키기 위해 새 화폐법과 환율 시스템을 도입하고 기존 계약들을 개정하면서 각종 문제에 부닥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드라크마 도입 이후 급격한 화폐 가치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IMF는 드라크마 가치가 유로화 평균보다 15∼20% 떨어질 것으로 봤다. 골드만삭스는 그리스의 대외채무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면 드라크마를 30∼50% 평가절하해야 한다고 추정한다. 평가절하에 따른 초(超)인플레이션이 그리스의 최대 위험 요인이라는 것에는 모든 시나리오가 일치한다.
아울러 민간부문의 디폴트(채무불이행)는 물론이고 EU, IMF 등에 진 빚에 대한 추가 디폴트도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최악의 상황에서 대외 원리금 지급을 중단하더라도 세수입이 정부 지출보다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추가 긴축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유로존 전체를 보면 그리스 탈퇴 이후 유럽의 위험 국가에서 독일 등 안전지대로 대규모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그리스는 13일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과 신민당 시리자 사회당 등 3당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연정 구성을 위한 비상회의를 열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이어 14일에도 막판 협상을 속개했지만 난항을 겪어 다음 달 재총선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 그렉시트(Grexit) ::
그리스(Greece)와 출구(exit)의 합성어. 1999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출범 이후 13년 만에 그리스가 첫 유로존 탈퇴국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최근 유럽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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