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유로존 위기의 핵심이 된 스페인에 대해 ‘긴축 없는’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현행 EU 규정상 금지된 민간은행에 대한 직접지원 방안이 동원되는 등 유로존 4대 경제대국 스페인의 파산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6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EU는 혹독한 긴축계획이나 경제구조 개혁 등을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스페인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자금난에 빠진 은행권 지원은 요청하면서도 국가 차원의 구제금융은 거부하는 스페인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조건이 완화된 매우 제한적인 수준의’ 구제금융이 제공되는 것이라고 FT는 분석했다.
EU는 이를 위해 다음 달 출범 예정인 유로존 상설 구제금융기구인 ‘유로안정화기구(ESM)’를 통해 스페인 은행을 지원하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EU 관계자는 “ESM이 민간은행에 직접 자금을 제공하는 것을 허용하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현행 EU 규정상 ESM은 EU 회원국 정부를 대상으로만 대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민간은행에 대출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개정하면 스페인의 국가부채를 늘리지 않으면서 부실화된 은행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다만 부실 은행의 회생 가능성에 대해 우려의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은행 건전성 등은 엄격히 따진다는 방침이다. 피에르 모스코비시 프랑스 재무장관은 전날 루이스 데 긴도스 스페인 재무장관과 만나 “ESM이 스페인 은행을 직접 지원하는 대신 지원 은행에 관리감독을 강화하면 된다”고 말했다. ESM을 통한 스페인 지원 자금은 은행권 부실자산 규모로 추산되는 800억 유로를 웃돌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스페인 구제방안은 회원국 간 논의를 거쳐 28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앞서 예산 감축, 연금제도 개편 같은 혹독한 긴축조건을 감수하며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 포르투갈 등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반발할 수 있다는 게 걸림돌이다. ESM 기금의 가장 큰 지분을 갖고 있는 독일이 적극 동의할지도 미지수다.
이런 가운데 스페인 정부는 7일 약 21억 유로(약 3조 원)의 국채 발행에 성공하며 자금 부족 위기에서 일단 한숨을 돌렸다. 스페인 재무부는 2∼10년 만기 국채를 발행해 목표액인 20억 유로보다 많은 20억7000만 유로를 조달했다고 밝혔다. 10년 만기 국채 발행 금리는 6.04%로 4월 발행 당시 5.74%보다 0.30%포인트 올랐다.
하지만 스페인 은행권 부실 해결에 필요한 자금 규모에 비해 국채 발행 규모가 턱없이 작아 금융시장 안정까지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EU 정상회의 등에서 뚜렷한 구제방안이 도출될 때까지 스페인의 불안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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