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여사 노르웨이서 연설… 軍이 정한 국호 ‘미얀마’ 안써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투쟁… 지지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
“내가 더이상 이 세계의 일원이 아니라고 느꼈던 가택연금 시절 노벨 평화상은 나를 다시 세상으로 이끌어줬고 현실감을 회복하게 했습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67)가 16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 강단에 섰다.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가택연금으로 21년 동안 미뤄졌던 수상 소감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그의 노벨상은 21년 전 남편 마이클 에어리스와 두 아들이 대신 받았다. 시청 주변엔 세계 각국에서 온 수천 명의 지지자가 운집했다.
하얀 꽃을 머리 뒤에 꽂고 진한 보라색 버마족 전통 상의에 연보라색 머플러를 두른 수치 여사는 이날 하랄 5세 노르웨이 국왕 등 6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종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40여 분간 이어진 연설 내내 그는 국가 이름을 군부가 정한 ‘미얀마’ 대신 옛 이름인 ‘버마’라고 말했다.
“더 중요한 것은 노벨 평화상으로 전 세계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버마의 투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버마는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수치는 자신을 ‘잘 알려진 수감자였다’고 표현하면서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수감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미얀마 감옥에 있는 수백 명의 정치범을 의미한 것이다. 그는 “이들을 기억해주고 이들이 빨리 풀려날 수 있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또 최근 불거진 미얀마의 소수민족·종교 갈등에 대해 “1948년 독립 이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쌓는 시간이 없어 벌어진 일”이라며 “휴전 협정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치 여사는 평화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개인과 민족 국가를 통합하게 하고 결국 인간사회를 안전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유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정의에 대한 실천 노력이 내 나라에 변화를 가져왔다”며 “그 덕분에 내가 오늘 당신들과 함께 이곳에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평화에 대해 가졌던 평범한 내 믿음이 더 강해지게 지지해줘 고맙고 덕분에 덜 외로운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며 노벨상위원회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2분여간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한편 수치 여사가 14일 스위스에서 기자회견 중 탈진한 것을 계기로 그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치 여사는 15년간 가택연금을 받으면서 영양이 부실해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로 체력이 약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4월 미얀마 보궐선거 운동을 위해 유세 활동을 할 때도 두 번 탈진해 쓰러졌다.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직전에도 쓰러져 인터뷰를 한 차례 미뤘다. 하지만 수치 여사 측은 “무리한 일정에 피로가 쌓여 생긴 일일 뿐 수치 여사의 건강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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