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외엔 이미 미국인… 젊은 불법이민자 추방 안해”
이민정책 대선 쟁점화 전략… 일각 “미국인 일자리 뺏겨”
“이 사람들은 (우리 자녀들이)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젊은이들입니다. 또 우리 이웃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며 매일 국기에 대한 충성맹세를 하는 친구들입니다. 가슴속에선, 마음에선 미국인들입니다. 모든 면에서 미국인이지만 서류상으로는 미국인으로 돼 있지 않습니다.”
15일 오후 2시 9분 백악관 로즈가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일정 요건을 갖춘 30세 이하의 젊은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선거가 채 5개월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이민정책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가 이날 밝힌 이민정책의 큰 뼈대는 ‘16세가 되기 전에 미국으로 불법 입국해 최소한 5년 이상 거주하면서 현재 학교에 다니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30세 이하의 외국인은 강제로 추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민권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불법 이민자 신분에서 ‘불법’이라는 딱지를 떼어 미국 체류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릴 적 부모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온 사람들은 직장을 구하거나 운전면허증을 딸 때, 학교에서 장학금을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불법 이민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 심지어 반에서 수석을 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그 나라 말도 할 줄 모르는 나라로 추방된다고 생각해 보라”며 추방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이민정책은 대선을 앞두고 불법 이민자가 많은 히스패닉계의 표밭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민주당 전략가들은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인 선택”이라고 했다. 특히 불법 이민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밋 롬니 공화당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압박하면서 공화당의 내부 분열도 감안한 정책적 선택으로 보인다. 공화당 내 보수파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편법사면이라는 뜻의 ‘뒷문 사면(backdoor amnesty)’이라고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선 때에도 선거 공약으로 어릴 때 불법 입국한 외국 출신의 군 복무자나 학생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이민개혁법안인 이른바 ‘드림법안(DREAM Act)’ 입법을 약속했다. 하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이번 조치는 의회 입법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는 행정부 조치사항이라는 점에서 ‘드림법안’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책이 시행되면 현재 총 1120만 명에 달하는 불법 이민자 가운데 약 80만 명이 강제 추방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불법 이민자 1120만 명을 국적별로 보면 멕시코 출신이 59%로 가장 많고 이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중남미 국가들이 14%이다. 중국과 한국 필리핀 인도 베트남 등도 2%씩 차지하고 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 보수 성향의 신생 온라인 매체인 ‘데일리 콜러’의 닐 먼로 기자가 오바마 대통령 연설 도중 “왜 미국 노동자들보다 이민자들을 우대하느냐”고 큰 소리로 외치는 소동이 벌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하는 동안 질문해서는 안 된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해프닝은 미국 내 보수층이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정책에 거부감을 드러낸 단적인 사례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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