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선택’ 세계경제 어디로]‘유로존 상생’ 햇살 비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8일 03시 00분


우파 신민주당 출구조사 근소하게 앞서… “親유로존 되나” 세계경제 기대감

세계가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는 그리스 2차 총선이 17일 실시됐다.

이날 오후 7시(한국 시간 18일 오전 1시) 투표 종료 후 ANT1방송이 발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구제금융을 지지하는 우파 신민주당이 27.5∼30.5%로 가장 앞섰다. 긴축정책 중단과 구제금융 전면 재협상을 내세운 급진좌파연합(시리자당)은 27.0∼30.0%로 2위를 차지했다. 사회당은 10.0∼12.0%를 얻었다. 연정 구성에 변수가 될 그리스독립당과 민주좌파는 각각 6.0∼7.5%, 5.5∼6.5%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날 출구조사 결과는 신민주당과 시리자당의 초박빙 양상으로 나와 어느 당이 1당이 될지는 불투명하다.

출구조사와 같은 개표 결과가 나오면 신민주당이 주도하는 친유로존 연정이 출범해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와의 구제금융 재협상에 나서게 된다. 유로존은 시리자당이 집권하는 상황에 비해 불확실성이 줄어 한 숨의 여유를 갖게 된다. 당장 위기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번질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 유권자들은 전날 밤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이 ‘유로 2012’ 대회에서 러시아를 꺾어 온 나라가 환호한 기쁨을 뒤로한 채 이날 투표소로 향했다. 총 유권자는 990만 명인데 투표율은 사상 최저였던 1차 총선(65.1%) 때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는 투표 때마다 나흘간을 공휴일로 지정한다. 투표는 항상 일요일인데 금∼월요일을 쉰다. 투표가 의무제여서 고향에 투표하러 가는 사람들을 위한 명목이다.

투표일인 이날 페이라이아스 지구에 위치한 스카이 방송국에 괴한 2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 수류탄 2개를 던지고 달아났다. 다행히 수류탄은 터지지 않았다. 이날 아테네 시내 중심 신타그마 광장 옆 투표소에서 만난 한 중년 남성(식당 운영)은 “신민주당을 찍었다. 시리자당은 나라를 더 위기로 몰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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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 결과의 확실한 윤곽은 오후 9시(한국 시간 18일 오전 4시)쯤 드러나지만 단독 과반수를 얻는 정당은 나오기 힘들어 연정이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또 어느 정당이 집권해도 유로존을 탈퇴하는 방향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견해가 일치한다. 전문가들은 “그리스가 더이상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힘겨운 협상을 거치더라도 연정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정 시나리오는 크게 2가지다.

첫째는 구제금융 이행을 약속하면서 재협상해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자는 신민주당과 사회당 주도의 연정이다. 여기에 민주좌파가 가세할 가능성이 크다. 바실리키 게오르기아두 아테네대 정치학 교수는 “신민주당이 1당이 되면 시리자당보다 연정 구성이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시리자당이 1당이 돼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그리스독립당과 민주좌파 및 공산당 내 일부 시리자 지지 세력을 합류시켜 과반인 151석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다. 시리자당이 1당이 되면 지지 세력을 모아 120석만 넘겨도 신민주당의 용인하에 연정이 출범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문제는 어떤 연정이 구성돼도 경제 문제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얼마 못 가 정부가 붕괴되거나 무정부 상태 같은 극한적인 상황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9, 10월경 새 연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나온다. 국민이 수긍할 만한 긴축 조건의 완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야당과 국민의 반발로 정부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재협상의 열쇠는 안도니스 사마라스 신민주당 대표(61)와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당 대표(38)가 쥐고 있다. 수려한 외모에 토목공학을 전공한 골수 운동권 출신의 타고난 선동가인 치프라스 대표는 17일 투표 후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했고 희망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반면 사마라스 대표는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유학을 마치고 26세에 처음 국회의원이 돼 금융, 외교 장관을 거친 정통 엘리트다. 그는 이날 “우리는 유로존 잔류와 드라크마(그리스 옛 통화) 복귀라는 악몽 중에 선택해야 한다”며 “내일 그리스의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6일 “약속하고 깨지는 방식이 더이상 유럽에서 지속될 수 없다”며 “어떤 연정과도 재협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더라도 유로존 탈퇴라는 극한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윤강덕 KOTRA 아테네센터장은 “시리자당이 연정을 이끌더라도 재협상 요구가 터무니없다고 판단될 만큼 그리스에 문제가 많다고 판단되면 요구 수위를 낮춰 유로존과 함께 가는 길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지도자들이 유로존 탈퇴를 원치 않는 민의에 반한 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것.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리스에 친유로존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유럽경제 위기는 일시적으로 부담을 더는 데 그칠 것이라고 16일 보도했다.

아테네=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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