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권력 모두 軍에 이양’ 임시헌법 전격 공표대통령에 내각구성권만…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들어혁명세력-이슬람주의자 “민정이양 약속 파기” 반발
이집트 대통령 선거에서 이슬람주의자이며 무슬림형제단을 이끄는 무함마드 무르시 자유정의당 후보(62)가 승리한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군부가 새 대통령의 핵심 권력을 군에 모두 이양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과도헌법’을 전격 발표함에 따라 이집트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혁명을 이끌었던 자유주의와 이슬람 세력은 민정이양 약속의 파기이자 사실상의 ‘군부독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현재 과도정권을 이끌고 있는 군 최고위원회(SCAF)는 대선 결선투표가 끝난 지 몇 시간만인 17일 밤, 14일 헌법재판소 총선 무효 판결에 따라 15일 해산된 의회를 대신해 ‘과도헌법’을 공표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법안에 따르면 SCAF는 입법 및 예산권을 군부가 장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헌법을 만들 100인의 제헌위원회 구성 권한도 갖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또 국방 안보는 물론이고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방위산업 신발 생수 호텔산업 등 경제적 이권을 보장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SCAF가 내놓은 과도헌법은 대통령에게 내각구성권과 법안에 대한 거부권만 부여해 대통령을 허수아비나 마찬가지 신세로 만든다. SCAF는 신헌법의 모든 조항에 대해 반대할 권리도 요구하고 있어 사실상 헌법제정권도 갖는다. SCAF는 새 헌법이 승인된 직후 다시 총선을 치르겠다고도 밝혔다. 군부가 내놓은 이번 안은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군부 독재를 하던 시절 누린 권리를 전혀 훼손받지 않고 전횡을 휘두를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이집트인권연구소의 호삼 바가트 대표는 “공식적인 군부 독재로의 회귀”라고 평했다.
SCAF의 발표에 대해 무슬림형제단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형제단은 17일 발표한 성명에서 “군부는 과도헌법을 공표할 권한이 없다. 이미 선정된 제헌의회 의원들이 19일 헌법 초안 작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군은 현재 국회의원들의 국회의사당 출입을 통제하는 상태다.
군부의 발표는 이번 대선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대선 결선투표가 끝난 17일 카이로 시내에서는 중무장한 경찰과 군인이 돌아다니고 군 헬리콥터가 타흐리르 광장 주변을 낮게 비행하는 모습이 포착됐다”며 “지난해 2월 무바라크가 축출되고 군부가 권력을 승계받던 당시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전했다.
시민들의 절망도 크다. 카이로 주민 무함마드 카노우나 씨는 NYT에 “악마(무바라크)를 겨우 제거했는데 아직 19개(SCAF 위원 19명을 지칭)나 더 남았다”고 했다. 또 다른 카이로 시민 아흐마드 사아드 엘딘 씨는 영국 일간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결선투표 용지에 후보 이름들을 지워버리고 ‘혁명은 계속된다’고 썼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실제로 이번 투표에서 아무에게도 기표하지 않은 채 만화책 주인공이나 벨리댄스 무용수, 지난해 시위에서 사망한 이들의 이름을 갈겨 쓴 투표용지들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