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힘든데…” 무덤덤한 홍콩 반환 15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9일 03시 00분


7월 1일로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15주년을 맞는다. 이날은 홍콩특별행정구의 새로운 행정수반이 될 렁춘잉(梁振英) 신임 행정장관의 취임일이기도 하다. 반환 후 몰락의 길을 갈 수도 있다는 우려와 달리 홍콩은 중국과의 경제교류 강화 등으로 더욱 발전해 왔다. 하지만 언론자유 쇠퇴 등 ‘동방의 진주’라는 과거의 명성은 점점 빛이 바래고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홍콩침례대 정치학과 딩웨이(丁偉)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홍콩인들의 대륙에 대한 신뢰와 호감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반환 직후인 2000년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은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내놨다. 인생의 가장 절정기를 뜻하는 ‘화양연화’는 주인공뿐 아니라 홍콩의 화려했던 과거를 가리키는 이중적 의미였다. 홍콩의 ‘화양연화’는 지나간 것일까?

○ 중국의 분위기 띄우기

반환 15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중국 언론은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28일 홍콩 디즈니랜드 등에서 현장 생중계로 반환 기념일을 맞는 분위기를 소개했다. 관영 신화통신도 홈페이지에 전문 코너를 마련해 홍콩의 발전상을 소개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바이두(百度), 시나닷컴 등 주요 포털 사이트들도 비슷하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29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3일간 홍콩을 방문해 반환 기념식과 행정장관 취임식에 참석한다. 후 주석의 홍콩 방문은 2007년 10주년 기념식 이후 5년 만이다.

후 주석의 방문에 맞춰 중국 정부는 홍콩 경제 및 사회 발전대책을 내놨다. 경제 무역 금융 교육 등에서 홍콩과의 합작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특히 홍콩을 위안화 역외 거래의 중심지로 하는 등 본토와 홍콩이 서로 ‘윈윈’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후 주석이 홍콩을 방문할 때 발표된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홍콩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97년 2만7000달러에서 2011년 3만4200달러로 증가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제를 등에 업고 세계 경제위기 속에도 꾸준히 성장을 지속했다. 중국과 홍콩 간 자유무역협정(FTA)인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을 통해 중국은 홍콩에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약속대로 홍콩의 자유로운 경제 시스템과 선진화된 금융 시스템도 유지했다.

○ 퇴보하는 홍콩의 민주주의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이로 인한 민주주의 퇴보에 대해 홍콩인들의 근심이 최근 수년간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홍콩대가 홍콩 반환 이후 실시한 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기조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홍콩인들이 “일국양제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2007년 77.5%를 최고점으로 점점 하락해 이달 조사에서는 51.6%로 떨어졌다. 홍콩의 미래, 중국의 미래에 대한 믿음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법치 수준이 계속 하락한다는 결과도 있다. 홍콩대 법학과 다이야오팅(戴耀庭) 부교수는 “홍콩의 현재 법치 수준은 여전히 높은 편이지만 조금씩 하락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홍콩 언론인들은 언론자유 축소에 긴장하고 있다. 홍콩기자협회가 올해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언론 매체 종사자 6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언론자유는 명백히 퇴보했다는 인식이 많았다. 홍콩 정부가 취재를 막거나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데다 언론사의 자체 검열, 중국 정부의 간섭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 무덤덤한 15주년

반환 15주년 기념잔치의 주인공인 홍콩인들은 다소 무덤덤하다. 28일 원후이(文匯)보 등 일부 친중 매체만이 반환 특집 보도를 내보낼 뿐이다. 무엇보다 살기가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부동산값은 천정부지다. 중국 자금의 급속한 대규모 유입과 주택공급 부족 탓이다. 주거용 부동산 가격은 지난해 11% 상승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다시 5% 올랐다. KOTRA 홍콩무역관 관계자는 “한국 평수 25평(82.6m²) 기준으로 시내 중심가의 비싼 아파트는 30억 원, 외곽 쪽 싼 아파트도 10억 원”이라며 “주택가격이 급등하면서 서민들의 고통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010년 1.7%에서 지난해 5.3%, 올해 1분기 3.8%로 급등했다.

빈부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지니계수는 0.537로 3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최근에는 민심을 직접 자극하는 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렁 신임 행정장관의 자택 불법 건축 의혹이 불거져 사회가 떠들썩하다. 또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21년을 옥살이하다 석방된 뒤 최근 숨진 채 발견된 리왕양(李旺陽) 씨의 사인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비등하다. 홍콩 시민단체들은 이런 문제들과 관련해 다음 달 1일 대규모 시위를 열 계획이다. 예정 인원은 5만 명이지만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 2003년 홍콩인 약 5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홍콩판 국가보안법인 국가안전법 제정을 무산시켰던 것과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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