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폭우 희생자 급증…민심 ‘부글부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7일 11시 45분


몸 사리는 최고 지도부, 현장 안 나타나

중국의 수도 베이징시를 강타한 폭우로 인한 희생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7일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베이징 시 홍수대책지휘부는 전날 밤 기자회견을 열고 2차 사망자 집계 현황을 발표했다.

사망자는 모두 77명. 지난 22일 1차 발표 때 37명의 배가 넘는 수치다.

특히 460㎜의 집중 호우가 내린 팡산(房山)구에서만 절반에 가까운 38명의 사망자가 발견됐다.

사망자는 팡산구를 비롯한 베이징 외곽의 반농촌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왔다.

반면 5환(環·동심원 모양의 간선 도로) 이내의 도시 지역에서는 사망자가 6명으로 비교적 적게 발생했다.

베이징시의 2차 발표는 당국이 희생자 규모를 축소·은폐한다는 비난 여론이 빗발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판안쥔(潘安君) 베이징 시 홍수대책지휘부 대변인은 "수색이 기본적으로 끝나 사망자가 큰 폭으로 늘지는 않을 것"이라며 "실종자 접수도 새로 들어오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이징 시는 여전히 정확한 실종자 숫자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앞으로 사망자 숫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베이징 시가 여론에 밀려 폭우 희생자 규모를 발표하기는 했지만 시민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인터넷에서는 베이징시를 비롯한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누리꾼 '양귀비의 소리'는 27일 포털 큐큐닷컴 게시판에서 "위풍당당한 중화의 수도가 배수 시설조차 엉망이어서 77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중국 관리들의 부패를 줄여 그 돈을 백성을 위해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에서는 최근 관 주도로 수재민 돕기 성금 모으기 캠페인이 시작됐지만 국민들 사이에서는 노골적인 보이콧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2008년 쓰촨 대지진 때 많은 중국인이 앞장서 피해 주민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인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성난 파도 같은 여론의 흐름 앞에서 중국 최고 지도자들도 바짝 몸을 사리고 있다.

전례 없는 수도 베이징의 재난 앞에서도 최고 지도부는 물론 국가 지도자들이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지금까지 팡산구의 수해 현장을 찾은 것으로 공개된 최고위 관리는 베이징 시 당서기인 궈진룽(郭金龍) 정도다.

과거 쓰촨 대지진이나 원저우 고속철 추돌 참사 등 대형 사건 때마다 현장에 도착해 국민을 위로하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인터넷에서는 이런 최고 지도부의 행태를 성토하는 글도 이어지고 있다.

'공작의 세계'라는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은 시나닷컴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 "어째서 중앙 최고지도자들이 한 명도 재난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가"라며 "우리의 총리는 어딨는가"라고 비판했다.

여론의 화살이 시 당국을 넘어 최고 지도부를 향해 날아갈 조짐을 보이자 중국 당국은 바짝 긴장한 채 인터넷 검열망을 한층 강화하고 나섰다.

27일 현재 웨이보에서는 원 총리는 물론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 자칭린(賈慶林) 정협 주석, 리창춘(李長春) 당 정치국 상무위원,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 등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의 이름이 모두 검색 금지어로 지정됐다.

심지어 누리꾼들이 검열을 피해 원 총리를 지칭하는 'WJB' 같은 단어까지 모조리 검색 금지어가 됐다.

이 밖에도 베이징시 당서기 궈진룽과 베이징 시 시장 왕안순의 이름도 검색 금지어로 지정됐다.

이런 강력한 검열 조치는 당국이 폭우 사태로 인한 여론의 후폭풍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는 최고 지도부가 교체되는 10년만의 최대 정치 행사인 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벌어졌다는 점에서 중국 최고 지도부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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