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동쪽으로 279km 떨어진 바닷가 휴양도시 베이다이허(北戴河). 흐린 날씨였지만 라오후스(老虎石) 해수욕장은 중국인뿐 아니라 러시아인들로 북적였다. 해변을 따라 서쪽으로 300m 남짓 걷자 가슴 높이까지 친 연두색 그물이 더 이상의 진입을 막았다.
‘그물 장벽’ 너머는 특급 보안구역인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중공 중앙) 휴양소.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등 전현직 최고지도자가 묵는 붉은색 지붕의 대형 별장이 즐비했다. 그물 넘어 해변에는 웃통을 벗고 땅을 파는 군인 등 30명 정도가 보였지만 대체로 적막했다.
8월 초순 이곳에서는 베이징의 더위를 피해 모인 중국 최고지도자들이 비공식으로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는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린다. 소식통들은 이달 중순까지 이곳에서 향후 중국의 10년을 짊어질 최고 지도부 인선이 사실상 마무리된다고 전했다.
○ 긴장 속의 휴양도시
회의를 앞두고 도시 전체가 계엄 상태인 듯했다. 요금소에서부터 검문이 시작됐다. 수십 m 간격으로 왕복 2차로 도로 양편에 선 경찰은 어떤 차도 정차하지 못하도록 했다. 어로 금지 구역이어서 텅 빈 앞바다에는 종종 군용 고무 모터보트가 순찰을 돌았다. 한 여관 주인은 “수상한 사람 식별요령 및 신고 등 주민을 대상으로 한 보안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퍄오(朴)란 성을 가진 한 주민은 “올해는 경비가 더욱 삼엄하다”고 말했다.
중공 중앙 휴양소를 향하는 시하이탄(西海灘)로 서쪽과 북쪽 일대의 경비가 가장 삼엄해 일반인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입구에 선 경찰들은 “허가 받지 않은 사람은 진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휴양소 인근에는 중국 중앙정부의 각 부서 숙소가 밀집한 ‘국무원 휴양소’ 구역이 있다. 또 중국석유 등 대형 국영회사들의 숙소도 곳곳에 있다. 1948년 인민해방군이 이곳에 진주했을 때 별장 719채가 있었다는 이 유서 깊은 휴양도시는 현재 베이징의 중앙 정부를 옮겨놓은 듯했다. 시내에는 출입증을 부착한 정부 차량들이 수없이 오갔다.
○ 중국의 차기 지도부는 누가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에는 중국 공산당 전현직 지도자들이 모여 올해 가을 18차 당대회에서 공식 발표할 차기 최고 지도부를 인선한다. 공산당 최고 결정기구인 정치국을 구성할 25명, 특히 정치국 상무위원에 누구를 발탁할지가 핵심이다.
미국에 본부를 둔 화교 뉴스사이트 둬웨이(多維)는 1일 이 회의에서 상무위원 수 조정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상무위원의 수를 지금처럼 9명으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줄일지는 각 계파의 힘겨루기에 따라 결정된다. 현재 후 주석은 축소를, 장 전 주석은 유지를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 등 서방 언론과 홍콩 언론도 관련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또 중국 전역에서 온 민원인들도 공안과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이 회의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각 지역에서 물난리가 났는데 한가하게 휴양과 회의를 겸해 ‘그들만의 권력’을 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베이다이허 회의 ::
여기에서 비공식으로 결정된 사항은 정식 회의를 거쳐 공식화된다. 이 회의는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 등 수영을 즐긴 최고지도자들이 이곳 별장을 여름 근무지로 삼으면서 자리를 잡았다. 1971년 마오의 후계자 린뱌오(林彪)는 쿠데타 음모가 발각되자 이곳 별장으로 가족과 함께 도망친 뒤 비행기를 타고 소련으로 향하다 추락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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