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6일 유로존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기로 한 것은 높은 국채 금리로 어려움을 겪는 국가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처방전에 해당한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이번 조치로 유로존 경제가 완만하게 회복될 것”이라고 밝힌 것도 높은 국채 금리에 시달려온 유로존 3, 4위 경제대국 이탈리아, 스페인의 경제 회복을 돕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유로존 회원국의 단기 국채를 유통시장에서 제한 없이 매입하는 ‘전면적 통화 거래’(OMT)는 해당국들이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하도록 돕는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날 ECB의 결정을 환영하며 “IMF도 적극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결정이 나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독일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드라기 총재는 이를 감안해 이날 발표한 조치가 유동성 증가를 불러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불태화(sterilization)’ 정책을 내놨다. 드라기 총재는 “국채 매입 계획은 (유로존) 붕괴 시나리오를 미연에 방지하는 전적으로 효과적인 방어벽이 될 것”이라며 독일과 반대 진영을 설득했다. ECB가 이날 기준금리를 현행 0.75%로 동결한 것도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보완 조치로 해석된다.
드라기 총재가 국채 매입 규모와 시기 등 구체적인 OMT 내용은 다시 별도로 밝히기로 한 것은 12일에 나올 독일 헌법재판소의 유로안정화기구(ESM) 위헌 여부 결정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 헌재가 유로존의 구제금융기구인 ESM이 위헌이라고 판결하면 ECB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독일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계승하는 ESM의 최대 주주다. 현재로선 합헌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번 ECB의 결정이 유로존의 위기를 얼마나 잠재울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최근 카탈루냐, 안달루시아 등 규모가 큰 지방 정부가 잇달아 중앙 정부에 50억 유로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나서면서 전면적인 구제금융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소문이 돈 스페인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ECB가 무제한으로 단기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밝힌 이상 채권 딜러들이 국채 금리 상승에 베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이날 35억 유로의 단기국채를 지난번보다 낮은 금리로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3년 만기 금리는 5.086%(7월 5일)에서 3.676%로, 4년 만기는 5.971%(8월 2일)에서 4.603%로 낮아졌다. 이번 주 초반에 7%에 육박했던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날 6.409%로 떨어진 데 이어 이날 ECB 발표 직후 6.065%로 급락했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이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회담한 후 “독립적인 긴급구제금융은 신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단기 국채 매입이 유로존 재정위기를 푸는 근본적인 해법이 못 되며 시간 벌기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필리프 뢰슬러 독일 경제장관은 이날 “ECB의 채권 매입은 장기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임시적인 이번 조치에 (규제)조건을 부과하는 것과 각국에도 별도의 규제조건을 부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BK애셋 매니지먼트의 보리스 실로스버그 팀장은 “ECB가 돈을 풀어 국채를 매입한 뒤 다시 거둬들이겠다는 것인데 이게 과연 효과를 내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ECB는 또 올해 유로존 경제성장률 전망을 ―0.1%에서 ―0.4%로 낮췄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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