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 日, 중산층이 무너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8일 03시 00분


일본 미야기(宮城) 현 경찰이 최근 아동매춘·포르노금지법 위반 혐의로 여성 6명을 체포했다. 보통 남성들이 잡히는데 이번에는 20∼40대 여성들이 차례로 붙잡혔다.

여성들은 서로 일면식도 없었지만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생활비가 없어 나체 사진을 팔았다는 점과 자신의 아이들을 모델로 촬영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사진 1장에 1000엔(약 1만4000원), 동영상 한 편에 1000∼5000엔을 받고 인터넷으로 음란물을 팔았다. “생활이 너무 힘들어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이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197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에 인구 1억 명을 돌파하고 국민소득이 가파르게 늘어난 일본은 ‘1억 총중류(總中流·일본 전 국민이 중산층에 해당한다는 의미)사회’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이런 일본의 중산층이 최근 들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피치 기준으로 1990년대 후반 최고 등급인 트리플A(AAA)였던 국가신용등급이 계속 떨어져 한국보다 낮아진 게 일본의 현실이다.

○ 휘청거리는 중산층

4일 오전 3시 도쿄(東京) 중심가인 미나토(港) 구에 있는 다마치(多町) 전철역. 양복을 입은 샐러리맨들이 쪼그려 앉거나 누워서 자고 있었다. 도쿄 시내의 택시 기본료는 710엔. 30분만 달려도 한국 돈으로 10만 원은 족히 나온다. 샐러리맨 월급으로는 택시 요금을 감당하지 못해 전철이 운행하는 새벽까지 역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이런 모습은 도쿄 시부야(澁谷), 신주쿠(新宿) 역에서도 볼 수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의 가구당 연평균 소득은 1994년(664만 엔)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2010년에는 538만 엔으로 2009년보다 2.1% 줄어들었다. 1987년 이후 최저다.

이우광 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저서 ‘일본 재발견’에서 연소득 300만 엔 이하를 하류(下流)로 봤다. 일본 국세청 민간급여통계에 따르면 1997년 32.1%였던 하류 계층은 2008년 39.7%로 늘었다. 가구 기준으로 2010년 현재 전체 가구의 32.9%가 하류에 속한다. 이제 상당수 일본인들은 ‘중간은 하는’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 아동과 외국인을 향하는 증오

줄어드는 소득은 팍팍한 삶으로 이어졌다. 2011년 기준 후생노동성의 생활의식 조사에서 ‘현재 상황이 매우 힘들다’ 또는 ‘어느 정도 힘들다’는 응답은 사상 최고치인 61.5%로 나타났다. 미혼 아이가 있는 가구로 기준을 바꾸면 69.5%로 더 높아진다.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보니 아동 학대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전국 아동상담소가 처리한 아동학대 건수는 5만9862건으로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0년 이후 가장 많다. 10년 전보다 2.6배나 늘었다.

외국인을 배척하는 기류도 확산되고 있다. 보수 성향의 주간지 사피오는 최근 ‘인터넷 우익 망국론’이라는 특집 기사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컴퓨터가 보급되고 고용 불안이 심해지면서 ‘인터넷 우익’이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이 등장했다”며 “이들 중 상당수는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느끼는 사회적 약자”라고 보도했다.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일본팀장은 “1990년대 이후 성장이 멈추고 200%가 넘는 국가 부채로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일본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며 “세수 감소, 치안 불안, 외국인 배척 현상이 심화될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채널A 영상]경제대국 일본의 심상치 않은 추락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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