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부시 대북정책 삐걱… 얼굴 붉히기도
YS-클린턴, DJ-부시는 불편, MB-오바마는 좋은관계 유지
역대 한미 관계는 양국 대통령의 성향과 지향점에 따라 냉·온탕을 오갔다. 심지어 냉전 기간에도 앙숙처럼 으르렁댄 적이 없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과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임기가 겹친 1977∼1979년이 대표적이다. 카터는 미군 철수를 압박카드로 쓰며 한국의 인권탄압을 문제 삼았고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박 대통령은 핵개발 검토로 맞받았다. 1979년 9월 방한 때 카터는 영빈관에 머물라는 제의를 뿌리치고 용산 미8군 영내에 숙소를 정할 만큼 박 대통령을 싫어했다.
전두환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한미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했다. ‘반공’이라는 공동 이념과 ‘악의 제국’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는 노태우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로 이어졌다.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잠깐의 밀월관계가 견원지간으로 변한 경우다. 클린턴이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한국을 택할 만큼 좋았던 관계는 1994년 북-미 제네바 협상에 한국이 소외되면서 삐걱거렸다. 1996년 북한 잠수함 침투 징후를 미국이 사전에 알고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의혹 등이 겹치면서 한미 갈등은 더욱 커졌다.
김대중 대통령과 클린턴의 궁합은 잘 맞았다. 하지만 2001년 취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해 6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김 대통령을 ‘이 사람(this man)’이라고 낮춰 부르는가 하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햇볕정책을 펴던 김대중 정부를 궁지로 몰았다.
이어진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는 더 나빴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는 노 대통령과 김정일을 ‘피그미’로 부르던 부시 사이에는 인식과 성격의 차이가 컸다. 노 대통령과 부시는 2007년 9월 마지막 정상회담에서도 북-미 평화협정 문제를 놓고 얼굴을 붉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보수 성향과 기독교 신자라는 공통점을 토대로 부시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도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