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사진)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2시간 후인 오전 1시경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컨벤션센터 패니얼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웃는 얼굴로 연단에 올라 “방금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전했다”며 “지금은 미국의 중요한 순간이므로 정치적 대결에 골몰하기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힘을 합치자”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돼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지만 국민은 다른 리더를 선택했다”며 “이제 국민의 한 명이 돼 그의 리더십을 따르겠다”고 연설을 마쳤다.
롬니 패배에 침울해 있던 관중들은 긍정적인 연설에 큰 박수를 보냈으며 일부 지지자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당초 승리 연설만을 준비했던 롬니는 오바마의 승리가 확정된 후 급히 패배 연설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롬니는 베인캐피털 경영 등 성공적인 기업가 전력을 내세우며 대선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기업가 전력은 그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오바마 진영이 집중적으로 제기한 해외 일자리 유출과 세금 미납 의혹, ‘부도덕한 기업가’ 이미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잇단 말실수와 모르몬교 신자라는 약점 등으로 지지율 부진에 시달렸던 롬니는 10월 초 대선 1차 TV토론에서 오바마를 압도하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대선 직전 발생한 허리케인 ‘샌디’ 이후 민심은 다시 오바마에게 기울었다.
롬니는 ‘0.01% 초(超)부유층’ 집안의 2남 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아메리칸모터스 회장인 아버지 조지 W 롬니는 미시간 주지사와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을 지내고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까지 나선 거물이었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도 대선 도전에 실패한 셈. 어머니 역시 미시간 주 상원의원에 도전한 경력을 갖고 있다.
아버지에게서 사업가 DNA를 물려받은 그는 1984년 베인캐피털을 창립해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다가 1999∼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2002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당선된 그는 민주당이 장악한 주의회와 초당적 협력을 통해 당시 각종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롬니가 ‘회생 전문가’란 별명을 얻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2008년 공화당 경선에서 패배한 후 절치부심해 올해 대선후보로 나섰던 롬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인적인 유세 일정을 소화하며 경합 지역을 누볐지만 대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인 앤 롬니는 지난달 ABC방송에 출연해 “남편이 이번 대선에서 패하면 더는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롬니는 경영 일선에 나서거나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계의 거물로 활동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다만 보수진영의 결집을 촉구하는 공화당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는 계속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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