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수렁에 빠져든 스페인에서 장례비를 아끼기 위한 시신 기증이 병원마다 줄을 잇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2일 “장례식과 묘지관리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유족들이 앞다퉈 시신을 기증하고 있다”며 “대학병원들이 시신 보관소 부족으로 곤란을 겪을 정도”라고 보도했다.
장례업체 흐루포메모라의 에두아르두 바이달 최고경영자(CEO)는 “스페인 장례식 비용은 평균 3000유로(약 420만 원)였지만 요즘은 대부분 합판 관을 쓰는 1000유로짜리 장례식을 선택한다”며 “저렴하게나마 격식을 차려 묘지에 관을 안장하는 사례도 드물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올해 바르셀로나대 의대에 기증된 시신은 1500구로 지난해보다 약 25% 늘어났다. 유족들의 관심사는 대학병원 측이 부담하는 운구 비용이다. 이 대학 시신기증 업무 담당자인 호세 루이스 라몬 씨는 “시신 기증으로 인해 차량 기름값 등 정확히 얼마나 되는 돈을 ‘절약’할 수 있는지 따져 묻는 사람도 있다”며 씁쓸해했다.
어렵사리 장례식을 치렀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관리비를 내지 못한 묘의 시신이 파헤쳐져 옮겨지는 일도 적지 않다. 마요르카 섬 팔마 시의 송발렌티 공동묘지에서는 6200기의 무덤이 연간 관리비 10.5유로(약 1만4600원)를 내지 못해 강제 이장될 위기에 처했다. 시 당국은 관리비가 밀린 무덤 속 유골을 저렴한 땅에 묘비 없이 옮겨 묻을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명 인사와 이웃한 ‘명당’ 가족묘가 매물로 나오고 있다. 판화가 후안 미로, 카탈루냐 독립운동 지도자 프란체스크 마시아가 묻혀 있는 몬주익 가족묘 용지를 8만 유로(약 1억1200만 원)에 내놓은 파우스투 루이스 씨는 “어머니가 반대했지만 아버지와 내가 설득해 당장 살림에 돈을 보태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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