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일리노이대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리즈 잭슨 씨(31·여)는 미국 내 50개 대학의 조교수 자리를 알아봤지만 모두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경기침체로 대학들의 교수 채용이 크게 줄었기 때문.
같은 해 시험 삼아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대에 지원서를 보낸 그는 바로 채용 통지를 받았다. 초임 연봉 4만5000달러(약 4900만 원)에 방 3개짜리 아파트 무료 임대, 연 44일 휴가, 이사비용 8000달러(약 860만 원) 지원이 조건이었다. 대학 측은 함께 이주하는 잭슨 씨 남편의 직장을 알아보고 매년 부부의 미국 방문 때 비행기 비용도 대주겠다고 약속했다.
잭슨 씨는 아부다비대에서 1년 근무한 뒤 지난해 다시 미국 대학에 자리를 알아봤지만 여전히 채용 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는 미국 대학 취직은 포기하고 종신교수직을 제안한 홍콩대로 자리를 옮겼다.
월가의 헤지펀드 회사에서 일하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해고된 데릭 카포 씨(29)는 미국에서 일자리를 잡지 못해 중국으로 향했다. 그는 현재 베이징에서 외국인을 위한 중국어학원 ‘넥스트스텝’과 직업소개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역시 미국에서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한 옛 동료 3명이 지난해 중국으로 건너와 그를 돕고 있다.
심각한 취업난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미국인들이 외국으로 몰리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4일 보도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많은 외국인이 미국으로 몰려들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고 있는 것. 외국 이주 현상은 고실업의 가장 큰 타격을 받은 20∼30세 연령에서 가장 많고 이들은 중국 홍콩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등 성장 가능성이 크고 외국인들에게 비교적 관대한 지역을 선호한다.
미 국무부 조사에 따르면 올해 외국에서 일하거나 공부하고 있는 미국인은 630만 명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미국 경기침체가 시작된 2008년 520만 명에서 4년 만에 21% 늘어난 것이다. 마케팅 연구기관 아메리칸웨이브에 따르면 ‘외국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고 답한 25∼34세 미국인은 2009년 0.9%에서 2011년 5.1%로 늘었다. 18∼24세 미국인 10명 중 4명꼴인 39.6%가 ‘외국 이주에 관심 있다’고 답했다.
외국에서 직장을 찾는 미국인들은 ‘외국인’이라는 프리미엄 덕분에 현지인보다 20∼30% 높은 임금을 받고 건강보험과 휴가 등 복지 혜택도 잘 받을 수 있다. 외국에서 직장을 구한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미국에 있으면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학자금 융자금을 10년이 걸려도 못 갚지만 외국에서 일하면 5년 내에 완전히 갚을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미국에 온 외국인 유학생들도 미국 내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해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미국인과 미국 유학을 마친 현지인들의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