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무르시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9일 03시 00분


이-하마스 휴전 도왔지만 ‘파라오 헌법’은 못마땅
이집트 전역 격렬 시위 사법부도 사흘째 파업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쫓아낸 이집트 민주화의 성지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27일 시위대 20여만 명이 모여 “퇴진” “퇴진”을 외쳤다. 이번엔 민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사진)을 향해서다. 28일에도 반정부 시위가 계속됐고 30일에도 대규모 시위가 예정돼 있어 정국 불안이 가속화하고 있다. ‘현대판 파라오 헌법’을 추구하는 무르시 대통령의 정치적 시도는 국내적인 혼란은 물론이고 미국도 딜레마에 빠뜨리고 있다.

발단은 무르시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합의가 나온 다음 날인 22일 내놓은 새 헌법 선언문. ‘사법기관의 의회해산권을 제한하는 것을 비롯해 대통령 법령과 선언문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혁명을 위해서는 어떤 조치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의 내용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독재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미국의 민주주의 이상과도 맞지 않는다. 미국은 “이집트 내부 문제로 이집트인만이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대화를 통해 풀 수 있다”는 기본 입장만 내놓았다.

이런 가운데 27일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미냐 등 전국 27개 주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특히 타흐리르 광장에 운집한 시위대는 ‘아랍의 봄’ 때 사용한 구호인 “우리는 정권의 붕괴를 원한다” “에르할(퇴진)”을 외쳤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행진에 앞장섰다.

이날 시위 과정에서 50대 남성이 최루가스를 마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반파라오 헌법’ 반대 시위가 시작된 후 3번째 희생자다. 또 이집트 곳곳에서 시위대는 무르시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무슬림형제단 사무실 본부에 들어가 집기를 부수거나 불을 질렀다. 이날까지 전국적인 충돌로 100여 명이 다쳤다. 법조인들도 새 헌법 선언문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무시한다며 사흘째 파업을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다음 달 2일 헌법재판소가 ‘새 헌법을 만들고 있는 의회를 해산할 수 있을지’에 관해 판결을 내릴 예정이어서 또 하나의 불씨가 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의회를 해산할 수 있다고 판결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양섭 선임기자 lailai@donga.com
#독재자#호스니 무바라크#이집트#시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