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사설감옥 수감자 석방… 집단 민원 분출에 느슨한 단속
“티베트 분신관련자 살인죄 적용”… 국익 관련된 문제엔 강경 대처
지난달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체제 출범 이후 중국 곳곳에서 인권 관련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권력 구조가 정착되기 전에 이슈를 선점하겠다는 인권 관련 단체들의 포석이 작용했다. 이와 함께 변화와 혁신을 보여줘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새 정권이 단속의 고삐를 느슨하게 풀어준 때문이기도 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인권 문제는 정치·사회 개혁과 직결돼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시진핑 체제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밍(明)보 등은 ‘전국법제선전일(법의 날)’이었던 4일 중앙정부에 민원을 제기하기 위해 전국에서 1500여 명이 베이징(北京)의 중국중앙(CC)TV로 몰려왔다고 전했다. 이들은 과거처럼 한꺼번에 버스에 태워져 베이징 남부 주징좡(久敬庄)이라는 곳에 끌려갔지만 당일 풀려났다. 저장(浙江) 성에서 온 한 민원인은 “경찰이 강제로 버스에 밀어 넣지 않았다. 예전과 달라졌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주징좡은 베이징 최대 ‘흑(黑·불법이라는 뜻)감옥’이 있는 곳이며 이날 기존에 수감됐던 수백 명이 풀려났다고 전했다. 흑감옥은 지방정부의 비리를 고발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베이징에 올라온 민원인들을 지방정부가 임의로 불법 감금하는 시설로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꼽혀 왔다.
누가 이들을 풀어줬는지, 앞으로 흑감옥이 완전히 근절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지난주 차오양(朝陽) 구 법원이 주징좡이 아닌 베이징의 다른 흑감옥 운영자에 대해 심의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 뒤에 이뤄진 조치여서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중국문필회 등 20여 민간단체가 세계 인권의 날(10일)을 앞두고 4일 정부에 인권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의 석방 등을 요구하는 공동서한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전했다.
같은 날 CCTV는 노동교화 처분을 받고 노동수용소에 수감됐다가 나온 랴오닝(遼寧) 성 잉커우(營口) 시의 류춘산(劉春山·80) 씨 인터뷰를 보도했다. 중국 내 노동수용소 수감자는 19만여 명(2008년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노동수용소 제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 내에서 나오고 있지만 관영 매체가 노동수용소의 인권문제를 집중 제기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앞서 지난달 29일에는 허난(河南) 성 출신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환자 100여 명이 에이즈 환자의 인권을 보장해달라며 베이징에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최근 리커창(李克强) 부총리가 에이즈 단체 대표들을 만나고 시 총서기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씨가 전날 에이즈 친선대사 자격으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어린이들을 만난 뒤 이뤄진 것이다.
중국이 인권 이슈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것을 계속 온건하게 처리할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전향적인 변화가 예상된다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정치분석가 천융먀오(陳永苗) 씨는 “새 지도자가 등극하면 뭔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마련이고 아무것도 아닌 조치가 대단한 변화처럼 해석되곤 한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정권 초기 유화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4일 역대 노벨상 수상자 134명이 류샤오보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다음 날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중국의 사법 주권과 내정 문제에 간섭하려는 외부 세계에 단호히 맞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휘발성이 큰 인권문제가 중국의 이익과 충돌할 때 어떻게 대응할지를 보여준 것이다. 특히 티베트 승려 등의 분신이 잇따르고 있는 간쑤(甘肅) 성은 티베트인의 분신을 기획, 자극, 동조하거나 이를 돕는 사람에게는 고의살인죄를 적용할 예정이라고 5일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고의살인죄에는 사형까지 언도할 수 있다. 티베트인 분신이 2009년 2월 이후 90명을 넘어서는 등 갈수록 가열되는 상황에서 강권으로 진압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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