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식인들이 공산당 최고 지도부의 자진 재산 공개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시진핑(習近平) 체제 출범 이후 처음 발생한 지식인들의 집단행동에 중국 당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홍콩 언론은 변호사와 학자 교수 등 1000여 명이 지난달 새로 선임된 당 중앙위원 205명 본인과 가족의 재산을 공개하라는 서한에 연대서명을 하고 있다고 14일 보도했다. 시 총서기 등 상무위원(정치국 위원 중에서 선출) 7명을 포함한 정치국 위원 25명도 중앙위원에 속한다.
이번 서명운동은 인권운동가 후자(胡佳), 인권변호사 궈페이슝(郭飛雄), 정치 비평가 후싱더우(胡星斗) 베이징이공대 교수 등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대 서명한 서한은 내년 3월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격)에 전달될 예정이다.
이들은 서한에서 “부패는 중국이 처한 가장 엄중한 문제”라며 “지도부가 먼저 재산을 모두 공개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어 “당 지도부는 사회의 자원과 권력을 쥐고 있고 이는 13억 명 인민의 행복과 복지에 큰 영향을 준다”며 “중앙위원들은 인민과 관련한 업무에만 힘쓸 것을 재차 맹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연대 서명은 2008년 민주화 인사들이 직접선거와 표현 종교 집회 결사의 자유 보장 등을 요구한 ‘08헌장’ 선언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SCMP는 이번 연대서명 주도 세력이 시 총서기의 사정(司正) 드라이브에서 힘을 얻고 있다고 밝혀 정부와의 대립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시 총서기 본인이 지난달 17일 정치국 집단학습회에서 “물건은 반드시 썩고, 썩은 다음에는 벌레가 생겨나게 된다”고 경고하는 등 부패 척결을 밀어붙이고 있어 서명운동을 무조건 탄압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현재 공직자 소득 공개 규정을 운용하고 있으나 본인의 월급 명세서만 제출하면 그만이어서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10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일가의 3조 원 규모 재산 축적설이 나왔으나 의혹 제기에 그친 것도 이런 제도적 맹점 때문이다.
다만 위정성(兪正聲) 신임 상무위원이 최근 재산 공개 의향을 밝힌 적이 있고, 왕양(汪洋) 광둥(廣東) 성 서기도 성 내 간부들의 재산 공개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도부 내부에서도 제도 도입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어 분위기가 과거와 사뭇 다르다. 실제로 광둥 성은 최근 주하이(珠海) 시 헝친(橫琴)신구, 광저우(廣州) 시 난사(南沙)신구, 사오관(韶關) 시 스싱(始興) 현 등 3곳을 재산 공개 시범지역으로 정했다.
그럼에도 재산 공개가 국민의 기대를 충족할 정도로 구체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미국 블룸버그뉴스에 따르면 시 총서기 일가만 해도 3억7600만 달러(약 4041억 원) 규모의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모두 공개하면 정권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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