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빠진 호랑이’일지라도 호랑이는 여전히 신비롭다. 세상을 떠났거나 권좌에서 물러난 독재자라 해도 숨겨진 일화와 뒷얘기는 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독재자의 곁에 있던 여인들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5월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후 세계 언론은 빈 라덴의 부인 셋을 앞세운 가계도를 보도했다. 북한의 김정일도 성혜림, 고영희, 김옥 등 그의 부인들을 분석하는 기사들이 지면을 장식하곤 했다.
이 책에는 20세기 중·후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독재자 6명이 등장한다. 쿠바혁명의 주역 피델 카스트로부터 발칸의 학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까지 역사를 뒤흔든 악명 높은 세기의 독재자들도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는 부드럽고 낭만적인 남성이었다고 한다. 카사노바형에서 일편단심형까지 그들의 사랑 방식도 다양했다.
카스트로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전형적인 카사노바형. 카스트로에겐 언제나 ‘그를 위해서라면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며 그의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끊이질 않았다.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을 때조차도 카스트로는 “첫 번째 부인과 떨어져 있어 행복하다. 25년형이 아니라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는 독특한(?) 연서로 유부녀를 사로잡았다.
후세인은 정치적 야심을 위해 친구들의 아내를 이용했다. 육체적인 관계 맺기를 통해 물의를 빚기보다는 선물 공세와 부드러운 말솜씨로 아내들을 포섭한 뒤 이 여성들을 통해 유력자인 남편들을 움직여 국가 지도자로서의 확실한 지지기반을 다졌다.
“첫 번째는 걸음마, 두 번째는 불안정한 자전거 타기, 세 번째는 안정적이지만 속도가 느린 세발자전거와 같다.” 일부다처제를 실천한 빈 라덴의 위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네 번째 결혼에 이르면, 마침내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 네 번 결혼하면 모든 사람을 추월할 수 있다.”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름만 봐도 현기증이 나는 카사노바형 독재자들의 현란한 사생활을 책의 전반부에 다뤄서일까. ‘착한 남편’이었던 이란의 호메이니와 밀로셰비치가 등장하는 후반부로 가면 마음이 한결 정화되는(?) 느낌이다. “화장실 청소를 비롯한 집안일을 아내에게 혼자 맡겨둘 수 없다”는 호메이니가 과연 이란인들이 신처럼 섬기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와 동일 인물인지 헷갈릴 정도다.
독재자들이 어떤 매력을 풍겼으며 여자들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그들의 혁명에 여인들이 끼친 영향과 변화가 충실히 소개돼있지 않아 아쉽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그 배경이 되는 역사적인 사건들과 섞이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다. 미시사는 근본과 뼈대를 잃지 않을 때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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