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가 2006년에 펴낸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는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1957년 2월∼1960년 7월 재임) 이야기로 시작한다.
1960년 6월 18일 도쿄(東京) 총리 관저 주위에는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 약 33만 명이 모였다. 기시 당시 총리는 “나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살해당해도 좋다”고 말했다.
아베 총재는 저서에서 ‘미일 안보조약이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일본 경제가 고속 성장하도록 했다’며 기시 총리의 판단이 옳았다고 주장했다. 아베 총재의 극우 정치 성향과 미국을 핵심 파트너로 여기는 외교적 성향은 외할아버지 영향을 크게 받은 셈이다.
자민당이 16일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해 아베 총재의 미국 중시 사고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재의 총리 취임 후 첫 방문지도 내년 1월 중순경 미국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 일정을 짜고 있다.
자민당은 민주당 정권 3년을 ‘외교 패배’의 시기로 규정하고 이번 총선 선거공약에 ‘미일동맹 강화를 기초로 국익을 지킨다’고 명시했다. 2009년 민주당 정권이 출범하면서 ‘대등한 미일 관계’, ‘아시아 중시 외교’를 천명하며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졌던 것과는 확연히 차별된다.
미국 역시 지난해 ‘동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선언하며 일본의 협력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제위기를 겪는 미국은 일본이 미군의 아시아 군사력 유지의 일정 부분을 맡아주길 내심 원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을 묶어놓은 큰 계기는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의 위협이다. 중국은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최근 ‘해양굴기’를 선언하며 바다로 힘을 떨치면서 일본과 충돌하고 있다.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이 대표적이다.
자민당은 총선 공약에서 센카쿠 수호를 위해 공무원을 상주시키고 어업환경 정비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자민당 정권에서 악화될 중-일관계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 및 안보 협력 강화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총재는 “일본과 미국의 배가 항해하고 있다고 치자. 미국의 배가 공격받을 때 일본이 돕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 순간 미일동맹은 끝난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곧 동맹을 맺은 나라가 공격받아도 자국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는 집단적 자위권 주장으로 이어졌다. 미국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긍정적이다.
일부 동아시아 국가가 과거 일제 침략에 대한 역사적 앙금을 드러내지 않고 전향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일본에 힘이 된다. 일본의 식민지 국가였던 필리핀 외교장관은 10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재무장을 매우 환영한다. 일본이 아시아의 중요한 균형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베트남은 난사(南沙) 및 시사(西沙) 군도, 필리핀은 스카버러 섬을 놓고 중국과 대치하고 있다 보니 ‘거인 중국’과 맞서기 위해 미국과 일본에 기대는 것.
하지만 일본과 중국의 긴장관계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규슈대 특임교수는 “센카쿠를 둘러싼 중-일 대립이 격화된 것은 양국이 모두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중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새 정권이 들어서면 화해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베 총재는 총선 과정에서 센카쿠 영유권 강화를 주장하면서도 “중국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26일 총리로 지명된 뒤 중국과 관계개선에 나설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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