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카이라이, 공범 왕리쥔 불신… 비리 증거 훔쳐 협박하다 공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1일 03시 00분


■ 中언론 ‘영국인 독살’ 내막 보도

영국인 닐 헤이우드가 살해되고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 시 서기가 낙마하는 등 중국 정계를 뒤흔든 사건 뒤에 어떤 치열한 권력투쟁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내막이 중국 언론의 탐사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난팡(南方)도시보 계열 매체인 난두(南都)주간은 17일 사태는 영국인을 독살한 보 전 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 씨가 아들의 보호자였던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 시 공안국장을 믿지 못해 그의 사무실을 터는 등 선제공격을 하다 도리어 역습을 당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왕 전 국장은 처음에는 영국인 살해에 소극적이었지만 나중에는 겁을 먹고 꽁무니를 빼는 구 씨를 재촉해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등 사실상 살해 사건에 주동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난두주간은 왕 전 국장이 올해 2월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 소재 미국총영사관으로 도주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특히 구 씨와 왕 전 국장이 동지에서 원수로 돌변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랴오닝(遼寧) 성 성장으로 있던 보서기가 2008년 충칭으로 갈 때 같이 간 왕 전 국장은 구 씨의 집안사까지 챙겼다. 외아들 보과과(薄瓜瓜)의 경호도 담당했다. 구 씨는 왕 전 국장을 ‘구이쯔(鬼子·놈, 친한 사이의 애칭으로도 쓰임)’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워졌다.

구 씨는 지난해 7월 11일 헤이우드 씨가 사업 문제로 마찰을 빚다 아들을 위협하는 e메일을 보내자 왕 전 국장에게 도움을 청한다. 왕 전 국장은 헤이우드 씨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나서지 않다 헤이우드가 중국 내에서는 중죄인 마약 불법 거래에 관여하고 있다는 단서까지 제시되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두 사람은 작년 11월 13일 헤이우드 씨를 살해하기로 하고 하루 전 직접 붉은 양초 안에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을 숨겨 넣었다. 13일 헤이우드 씨가 베이징(北京)에서 난팡항공 CZ8129 일등석을 타고 충칭에 왔다.

그날 오후 8시 헤이우드 씨에게 직접 독약을 먹이기로 한 구 씨가 “내 몸이 안 좋아서 못 하겠다”며 주저하자 왕 전 국장이 “그럴 수는 없다”며 구 씨를 설득해 자기 기사를 시켜 사건이 발생한 난산리징두자(南山麗景度假)호텔로 태워 보냈다. 몸에 딱 붙은 옷을 입고 주머니에 양초를 넣고 나타난 구 씨는 이날 밤 호텔에서 헤이우드 씨를 직접 독살했다.

사건은 엉뚱한 데서 꼬였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구 씨가 공모자인 왕 전 국장을 꼼짝 못하게 하기 위해 작년 12월 하순 그가 베이징으로 출장 간 틈을 타 집사 격인 장샤오쥔(張曉軍) 씨를 시켜 그의 사무실을 털었다. 장 씨는 여기서 금덩어리와 고급시계 와인 구두 옷 향수 담배 등 뇌물로 볼 수 있는 것을 몽땅 ‘협박할 증거로’ 확보했다. 왕 전 국장이 돌아와 따지자 구 씨는 “중앙기율위의 감사에서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라고 둘러댔다. 구 씨는 지난해 12월 말 왕 전 국장의 개인비서 4명을 임의로 바꾸며 포위해 들어갔다.

왕 전 국장은 보 전 서기에 매달렸다. 올해 1월 보 전 서기에게 구 씨가 영국인 독살, 공안국 불법 침입, 보 전 서기가 첫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리왕즈(李望知·보 씨에서 성을 바꿈) 체포 사주 등의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가 잘 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 전 서기는 다음 날 왕 전 국장을 불러 궈웨이궈(郭衛國) 공안부국장이 보는 앞에서 왕 전 국장의 뺨을 올려붙였다. 부인 구 씨를 모함한다는 것이었다.

왕 전 국장은 전술을 바꿔 구 씨에게 사죄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2월 2일 왕 전 국장은 공안국장에서 해고됐다. 자칫 목숨 보전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나흘 뒤인 2월 6일 미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요청했다.

구 씨는 사형 집행유예(사형을 선고하되 집행은 유예), 왕 씨는 검찰 수사에 협조한 점이 참작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구카이라이#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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