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가장 강력한 총기 보유 이익단체인 미국총기협회(NRA)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총기 규제 법제화에 일절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총기 사고가 잇따르고 있으나 총기 규제 시도는 이번에도 과거처럼 유야무야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커지고 있다.
웨인 라피에르 NRA 부회장은 23일 NBC방송의 시사프로그램인 ‘미트 더 프레스’에 출연해 총기 규제 법안 마련을 위해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이 운영하고 있는 태스크포스(TF)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20년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총기 보유를 인정한) 수정헌법 2조를 파괴하려는 패널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압도적 다수 미국인의 지지를 받고 있는 NRA는 수정헌법 2조를 잃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피에르 부회장은 대용량 탄창 생산과 판매를 제한하거나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동안 시행됐던 공격용 무기 규제를 되살리는 방안도 “그건 엉터리 입법 쪼가리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일부 공화당 의원도 NRA를 지지하고 나섰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캘리포니아·공화)도 이날 ‘미트 더 프레스’에 나와 “(NRA가 21일 제기한) 모든 학교에 무장 경찰을 배치하는 방안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던 사람들이 ‘정부가 내 총을 뺏어 가지 않도록 해 달라고 했다”라며 “지금까지 어떤 규제도 성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추가 규제에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미국 언론들도 ‘용두사미’ 가능성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934년 이후 거듭된 총기 사고와 이에 따른 총기 규제 논의가 어떻게 흐지부지됐는지를 3개 면에 걸쳐 보도했다.
이 신문은 역사적으로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 발생→개인의 총기 보유 규제 여론 비등 →총기 옹호 단체들의 강력한 로비와 의회에서의 지루한 입법 전쟁→뒤늦게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 뚫린 실효성 없는 규제 법안 탄생 및 사멸’이라는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993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아내를 잃은 한 시민이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1994년 공격용 무기 규제 법안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NRA 등 총기 옹호 단체들의 로비에 넘어간 의원들은 과거 구입한 공격용 무기를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나마 법안은 2004년 연장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14일 미국 코네티컷 주 뉴타운 총격 사건 참사 후 백악관 인터넷 청원 사이트인 ‘위 더 피플’에 총기 규제 청원이 잇따라 올라오고 오바마 대통령은 23일 특별 영상 메시지를 달아 신속하게 화답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24일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총기 규제를 위한 강력한 정치적 의지가 없었다”라며 그가 어느 정도 진정성을 나타낼지에 의문을 표시했다.
미국에서 총기 규제가 어려운 이유는 독특한 역사적 배경도 한 요인이다. 1776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서부 개척, 1861∼1865년 남북전쟁 등을 거치면서 미국인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자신이 직접 지킨다는 신조를 지켜 왔다. 헌법이 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자 ‘국가로부터 내 총을 지킬 권리’를 수정헌법 2조에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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