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을 원치 않는다. 나를 끊임없이 안락지대에서 밀어내려는 사람을 원한다. (대선에서 맞붙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국토안보장관에 기용할 수도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8년 대선 승리 후 “어떤 인물들로 내각을 꾸밀 거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대선 일등공신이나 측근이 아니라 능력만 있다면 반대파라도 중용하겠다는 것. 오바마 1기 내각에는 실제로 그의 적과 라이벌이 많이 포진했다.
그러나 새로 들어설 오바마 2기 내각의 성격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주요 직책이 그와 친하고 그의 정책을 잘 이해하는 인물로 채워지고 있다. 이에 대해 4년 동안 국정 경험을 쌓은 오바마의 ‘확신 내각’이라는 호평과 함께 초심을 잃고 ‘이너서클 정치’를 펼치려 한다는 비판이 맞서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9일 오바마 1기와 2기 내각을 비교해 ‘라이벌의 팀(Team of Rivals)’에서 ‘동지의 팀(Team of Allies)’으로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라이벌의 팀’은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1860년 대선 승리 후 당내 라이벌이었던 3명을 주요 각료로 기용하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준 것을 이르는 말. 하버드대 역사학자 도리스 컨스 굿윈의 링컨 전기 제목(한국어판 제목은 ‘권력의 조건’)이기도 하다. 링컨은 특히 자신을 ‘긴팔원숭이’라고 놀려대며 경멸했던 에드워드 스탠턴을 전쟁부 장관에 기용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링컨을 꼽는 오바마 대통령은 1기 내각을 꾸릴 때 민주당 경선에서 사생결단식으로 맞붙었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기용했다. 또 조지 W 부시 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을 맡고 있던 로버트 게이츠를 유임시켰다. 오바마는 클린턴과 게이츠 장관이 2009년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아프가니스탄 공세를 주장할 때도 그대로 따랐다.
또 오바마는 부시 행정부에서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낸 친(親)월가 성향의 티머시 가이트너를 재무장관에 발탁했고 가이트너가 사임 압력을 받을 때도 그를 지지했다. 2010년 중간선거 패배 뒤에는 반대파 포용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공화당 출신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장군을 택했고 비서실장에는 재계 출신 윌리엄 데일리 전 상무장관을 중용했다.
그러나 2기 행정부에서는 과거 상원의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외교 멘토’ 존 케리와 척 헤이글을 각각 국무, 국방장관에 지명했다. CIA 국장에 낙점된 존 브레넌 백악관 대(對)테러·국토안보 보좌관은 오바마에게 코네티컷 총기 참사 소식을 처음 보고했을 정도로 최측근 인사다. 재무장관 지명이 확실한 제이컵 루 백악관 비서실장은 최근 1년 동안 백악관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 본 사이로 그 전에는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으로 1년 넘게 데리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내각 구성에 대해 1기에 ‘필요한(need)’ 사람을 썼다면 2기에는 ‘원하는(want)’ 사람을 쓰고 있다고 평가한다. ‘워싱턴 아웃사이더’였던 오바마는 1기 때 반대파라도 기용해 눈치를 봐가며 국정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기용할 만큼 부처 장악력과 정책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다는 것.
오바마의 자신감은 최근 논란이 되는 내각의 ‘다양성’ 부족에서도 알 수 있다. 1기 때 내각의 절반 이상을 여성과 소수인종 출신에게 배려했던 오바마가 이번에는 주요 직책을 모두 백인 남성 위주로 채우고 있다. 더이상 선거의 부담이 없는 오바마가 공화당이나 여론 분위기에 신경 쓰기보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너서클 멤버와 친구 위주로 내각을 꾸미는 안락지대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유에스에이투데이는 9일 분석했다. 이 같은 인사정책으로 오바마 2기에는 정치 대립과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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