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취임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엔화를 무제한으로 찍어내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는 ‘아베노믹스’를 구체화하면서 주요국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경주회의 이후 사그라지는 듯했던 ‘글로벌 환율전쟁’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형국이다. 지난해 미국과 유럽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잇달아 돈을 푼 데 이어 일본마저 합류하자 자국 통화가치가 크게 치솟았기 때문. 특히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비상이 걸렸다.
○ 日정부 “무제한 유동성 풀겠다”
18일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 가치는 90.1엔으로 마감해 전날보다 1.5엔 상승(엔화 가치 하락)했다. 지난해 9월 말 달러당 77엔에 머물던 엔화는 4개월 만에 90엔 선까지 올랐다. 엔-달러 환율이 90엔을 돌파한 것은 2010년 6월 23일 이후 2년 7개월 만이다.
이는 아베 총리의 ‘엔화 약세 정책’에 따른 것이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 시절인 지난해 11월 “일본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과 엔고 탈출을 위해 윤전기를 돌려 화폐를 무제한 찍어내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기를 띄우겠다”고 밝혔다.
11일 이런 ‘아베노믹스’가 본격 시작됐다. 각료회의에서 20조2000억 엔(약 239조7000억 원) 규모의 경기부양을 위한 긴급경제대책을 확정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수출 기업의 이익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일본 닛케이 평균 주가가 이날 1년 11개월 만에 10,900엔 선을 돌파했다.
엔저 행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디플레이션을 해결할 때까지” “현재 0% 안팎인 물가상승률이 2%가 될 때까지”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풀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미국 CNBC는 달러 대비 엔화가 올해 100엔을 돌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주요국 거세게 반발…무역 보복 조짐도
주요국들은 일본의 엔저 정책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잇달아 쏟아내고 있다. 자국의 화폐 가치가 오르는 것을 용인하지 않고,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환율 방어에 나서 수출시장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재무장관회의인 유로그룹의 장클로드 융커 의장은 최근 “유로화 가치가 위험할 정도로 높다”며 대응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일본 정부의 정책을 우려한다”며 “중앙은행의 정책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국제 금융시장에 유동성 과잉을 가져오고 있다”고 지원 사격에 나섰다.
G20 의장국인 러시아의 알렉세이 울류카예프 중앙은행 수석부총재도 16일 “우리는 환율전쟁의 문턱에 있다”며 “일본이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도 이를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환율 전쟁이 무역 보복으로 번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전미 자동차정책위원회(AAPC)는 최근 “오바마 행정부가 (일본의 엔저 정책을)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라”며 “(일본이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상응하는 보복이 가해질 것이라고 경고하라”고 압박했다.
○ 한국 정부 대응은
당초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던 한국도 환율 방어를 위해 본격적인 개입에 나섰다. 연초부터 원-엔 환율(100엔당)이 1180원대로 주저앉자 세계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수출 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적극적이고 단계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환율 변동폭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도록 허용하는 중앙은행은 없다”며 “엔화가치 하락으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필요시 적극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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