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오바마시대 2기 개막] “과욕의 오류 빠지지 않고 상처 보듬는 통합대통령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2일 03시 00분


■ 전문가들 ‘리더십 성공 위한 3大키워드’ 제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1일 취임사에서 “모든 차이가 다 극복될 수는 없다. 그러나 ‘공통점(common ground)’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재선에 성공한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미국 사회가 직면한 인종 계층 이념 갈등을 극복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고 천명한 것. 1기 취임 당시 68%에 이르는 경이적인 지지도와 비교했을 때 2기는 52%의 비교적 낮은 지지율로 출발하고 있지만 큰 격차로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은 나를 선택했다”라는 말을 자주 꺼내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달 초 대통령 사학자들을 불러 2시간 반 동안 토론하면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을 2기 리더십의 롤 모델로 제시했다고 한다. 전후 미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수습하고 경제 번영의 토대를 닦은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2기 집권 때 더 빛을 발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은 오바마가 성공한 재선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 위해선 3개의 키워드를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어젠다’를 빨리 정립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 어느 대통령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1기의 닻을 올렸지만 테러단체 알카에다를 이끄는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하고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쟁을 종료하는 외교적 업적을 남겼다. 경기부양책 효과로 경제가 살아나고 있으며 획기적인 건강보험 개혁안도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재선 대통령의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은 1기 때보다 훨씬 빨리 찾아온다. 대개 재선 1년 뒤부터 통치력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1기 때 경제와 외교에 치중한 오바마 대통령은 2기에는 총기규제 이민 환경 등 사회 이슈들을 정면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다.

양극화로 치닫는 정치권을 조율할 ‘외교적 기술’도 필요하다. 상·하원을 민주당과 공화당이 양분한 현 의회 구조에서 초당적 협조란 쉽지 않다. 취임사에서 정치권이 ‘공통의 기반’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 오바마 대통령이 대화와 소통을 위해 얼마나 손을 내밀지 주목된다.

마지막으로 ‘위험(리스크)’을 감수해야 한다. 2008년 무명의 초선 상원의원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민주당 대통령후보 자격을 획득한 뒤 여세를 몰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오바마의 정치적 여정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유산을 이어 미국이 직면한 정책적 도전을 과감히 국민 앞에 제시하고 헤쳐 나가야 한다.

역사적으로 대다수 재선 대통령의 성적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72년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났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2기 동안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시달렸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 위기까지 갔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기 취임 7개월 만에 닥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미숙하게 대응해 지도력에 타격을 입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전임자들을 의식한 듯 재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제일성으로 “재선 대통령들이 거쳐 갔던 과욕의 오류에 빠지지 않겠다”고 밝혔다. 분열자가 아닌 상처를 보듬는 통합자로서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을 가리켜 최근 미국에서 ‘치유 통수권자(Healer-in-Chief)’라는 단어가 회자되고 있다. 더이상 선거 부담이 없는 그가 어떤 치유책을 제시할지 기대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취임식 축하인파 70만명… 4년전 절반 ‘차분한 파티’ ▼

■ 할리우드 스타들 총출동… 부시 前대통령 부자는 불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기 취임식이 열린 21일 이른 아침부터 미국 워싱턴 인근은 행사에 참석하려는 인파로 교통 전쟁이 벌어졌다. 오전 5, 6시부터 전철에는 외투, 귀마개, 목도리로 중무장한 승객들이 취임식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취임식이 열리는 의사당 인근 ‘캐피털 사우스’역과 퍼레이드가 열리는 백악관 인근 역을 전철이 지날 때마다 승객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갔다. 전철역 바깥 행사장 입구에도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인파로 북적였다. 워싱턴 교통당국은 이날 취임식 인파에 대비해 전철 운행을 평소보다 1시간 이른 4시부터 시작해 두 시간 늦은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연장했다.

그래도 오바마 대통령의 2기 취임식은 4년 전 첫 취임식에 비해 차분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2009년에는 첫 흑인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려고 160만여 명이 몰렸지만 21일 재선 취임식에는 50만∼70만 명의 인파가 몰린 것으로 취임식준비위원회는 추산했다.

취임식장 주변은 마치 할리우드를 통째로 옮겨 놓은 것처럼 유명인이 대거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취임식에서 비욘세, 켈리 클라크슨, 제임스 테일러가 미국 국가와 축가를 부른 것을 비롯해 케이티 페리, 어셔, 스티비 원더, 조지 로페즈 등 유명 연예인이 총출동했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는 전임 대통령들이 참석하는 것이 관례. 그러나 이날 취임식에 부시가(家)의 전임 대통령 2명이 모두 불참하고 지미 카터, 빌 클린턴 등 민주당 출신 전임 대통령만 참석해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내놓은 통합의 메시지가 무색해졌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기관지 질환 등으로 장기 입원했다가 최근 퇴원한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 간호 때문에 불참했다고 밝혔다. 1기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때 생존한 전임 미국 대통령 4명이 모두 참석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날은 마틴 루서 킹 기념일이었다. 그러나 최초의 흑인 대통령 재선 취임식 때문에 킹 목사의 기념일은 묻혔다. 하지만 흑인들은 이에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성경 위에 킹 목사가 생전에 사용했던 성경을 포개 올려놓은 다음 손을 얹고 선서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4년 전 취임식 때 링컨 전 대통령이 취임식 때 사용했던 성경만 사용했다.

한편 조 바이든 부통령은 20일 워싱턴에서 열린 아이오와 주 지지자들의 취임 축하 파티에서 “저는 미국의 대통령이어서 자랑스럽습니다”고 말실수를 해 웃음을 자아냈다. 지지자들이 그의 실수에 웃으며 박수를 치자 바이든의 첫째 아들인 델라웨어 주 검찰총장 조 바이든 3세는 급히 아버지의 말을 가로채며 참석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말을 잘못했다”라고 해명했다. 바이든 부통령도 실수를 깨닫고 즉시 “저는 오바마 대통령의 부통령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정정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1988년과 2008년 두 차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갔지만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와 오바마 현 대통령에게 각각 패했다.

이날 오바마 재선 캠프와 민주당전국위원회(DNC)의 발표에 따르면 오바마 재선에 선거자금을 기부한 지지자는 총 450만 명으로 모금액은 11억 달러(약 1조1700억 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 재선의 ‘일등공신’인 라틴계 유권자들은 20일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취임 축하공연 ‘라티노 취임식 2013’을 개최하고 대대적인 ‘세(勢) 과시’에 나섰다. 오바마 재선 캠프의 공동의장을 맡았던 유명 여배우 에바 롱고리아의 사회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안토니오 반데라스, 로자리오 도슨, 마크 앤서니, 호세 펠리시아노 등이 참석해 무대를 빛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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