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은 보통사람, 가장 낮은 곳서 가장 큰 환호… 그들이 주인공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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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2기 취임식 현장 가보니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정말 환상적(fantastic)이었어요. 민주주의가 뭔지 다시 생각하게 해줬고 건강보험개혁(일명 오바마 케어)에 대한 의지를 다시 밝혀줘서 좋았어요. 그것은 저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내 아들의 미래에 중요한 문제죠. 그는 정말 위대한 사람입니다.”

21일 낮 12시를 막 넘긴 미국 워싱턴 의회 앞 유니언스퀘어에서 아들 조너선 군(7)과 함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기 대통령 취임연설을 들은 케티 슬레터훕 씨(41)는 감격에 겨워 이렇게 말했다. 다시 4년을 시작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격려하기 위해 미국 중남부의 뉴멕시코 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그는 “오바마 케어가 없다면 우리 같은 중산층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슬레터훕 씨의 볼이 흥분으로 상기된 순간 곁에 서 있던 다른 축하객들은 “4년 더(4 more years)” “오바마”를 연호하며 환호했다. 검은 얼굴의 미국인 존 토머스 씨(39) 부부도 그 가운데 있었다. 워싱턴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한다는 토머스 씨는 “4년 전에도 이 자리에 있었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감동적인 연설이었다”고 평가했다. 선글라스 너머 촉촉이 젖은 부인의 눈망울이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 2기 취임식을 직접 볼 수 있는 ‘가장 낮고 먼 자리’였던 유니언스퀘어의 노란색 구역과 내셔널 몰의 황금색 구역은 이렇게 첫 재선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지지하는 미국인들로 가득 찼다. 저만큼 앞에 높이 솟은 의사당 계단의 빨강, 초록, 주황, 파랑 구역은 미국과 전 세계 엘리트들의 의자로 채워졌지만 이곳은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 손을 호호 불며 서서 전광판을 응시하는 보통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부분이 흑인과 히스패닉계, 여성 등 전형적인 오바마 지지층이었다. 정치인들에 대한 거액 기부자가 아니라서 의사당 계단 자리는 못 얻었지만 멀리서라도 역사의 현장을 보기로 결심한 충성파였다.

이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전광판에 클로즈업될 때마다 “와∼”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미셸 여사와 두 딸, 조 바이든 부통령 내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른바 재정절벽(fiscal cliff) 협상을 질질 끌며 지도력에 한계를 보인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등장하자 “우∼” 하며 야유를 보냈다.

추운 날씨에도 자녀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 축하객이 많았다. 슬레터훕 씨는 “조너선에게 큰 교육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4년 전에는 세 살이던 조너선이 ‘버락 오바마’를 ‘라코’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확실히 대통령이 누군지 안다”고 자랑했다. 조너선 군은 ‘대통령을 얼마나 좋아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많이(a lot)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한 백인 아버지는 중학생 딸에게 “대통령 취임식은 미국인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 오바마는 특히”라고 말했다.

이날 하루 워싱턴 도심은 ‘보통 미국인’들의 해방구였다. 차들이 사라진 빌딩숲 속은 하루 종일 가족 단위 축하객과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사진과 가방, 모조 달러 등을 파는 상인들의 차지였다.

4년 전 1기 취임식 때와 비교하면 축하객이 180만 명에서 70만 명으로 줄었다지만 이날 오전 9시 종점인 버지니아 주 비엔나 역에서 출발한 오렌지 라인 지하철은 세 번째 역인 웨스트 폴스처치 역에서 가득 찼다. 오랜만에 만난 지역 주민들이 웃고 떠드는 통에 지하철 안은 단체 여행을 떠나는 ‘관광 열차’를 연상시켰다.

워싱턴 시 당국은 만일의 테러행위에 대비해 축하객들에 대한 검색에 소홀함이 없었다. 경찰은 물론이고 군인까지 동원돼 노란색 구역으로 가기 위한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만 40분가량 걸렸다. 슬레터훕 씨와 아들 조너선 군, 토머스 씨 부부를 포함해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하나의 국가, 하나의 국민(one nation, one people)’을 위한 축제였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오바마#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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