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를 대표하는 독일이 일본의 엔화 가치 절하 정책에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의 실현 가능성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측근으로 집권 기민당(CDU)의 재정통인 미카엘 마이스터 의원은 22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경제의 진짜 문제는 구조적 결함인 만큼 환율이 아니라 구조적 치유가 필요하다. 일본이 환율 조작으로 성과를 낸다 해도 단기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다음 달 7일 주요 20개국(G20) 관계자들이 도쿄(東京)에서 만나는데 이때 일본이 환율 정책을 수정하도록 독일이 역내국들의 협조를 모색할지 모른다”고 밝혔다. 이는 다음 달 15, 1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장 회의에서 다른 나라들과 협조해 일본의 환율 정책을 쟁점으로 삼겠다는 경고다.
마이스터 의원은 “일본과 경쟁하는 나라들이 어떤 조처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은 뒤 “우리가 아무 대응도 하지 않거나 아니면 일본처럼 움직여 결국 모두를 해치는 우를 범하든지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앞서 “일본이 통화 정책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옌스 바이트만 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일본이 ‘환율 정치화’의 우를 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상공회의소의 알렉산더 슈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다른 중앙은행들도 일본은행처럼 자산을 무제한 사들이는 결정을 내리면 이것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또 다른 불씨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 내부에서도 아베노믹스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인플레이션 기대감에 국민들이 미리 소비에 나서도록 해 ‘기업 수익률 개선→급료 인상→경기 부양→소비 촉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디플레이션의 원인은 고령화와 청년실업으로 인한 소비 위축, 중국 등 신흥 공업국의 과잉 공급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여서 금융 완화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아사히신문은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일본은행 총재가 정부와 2% 물가 상승 목표에 합의했지만 달성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23일 보도했다. 과거 거품경제(버블) 시기에도 물가상승률은 평균 1%대에 그쳤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최근에도 2년간 정책금리를 제로로 묶고 66조 엔(약 800조 원)을 시장에 풀었지만 물가상승률은 0% 안팎에 머물렀다.
오히려 2% 물가상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은행이 돈을 마구 찍어내면 엔화 가치가 추락해 국제사회에서 환율 조작국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국가신용등급 하락과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파탄 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사설에서 “정부가 함부로 국채를 증발해 일본은행에 매입을 강요하면 재정·금융정책의 신용을 유지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물가가 상승해도 고용 확대와 임금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아 체감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나쁜 물가 상승’이라면 국민 생활만 위협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일본은 연금이나 저축, 배당 소득으로 생활하는 60세 이상 인구가 30%나 돼 물가 상승에 따른 파장은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
아베노믹스는 시간과의 싸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기업이 생기를 되찾기 전에 부작용이 두드러지면 7월 참의원 선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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