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는 신화’ 델 사들인 델… 26조원 베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7일 03시 00분


주식 모두 매입후 상장폐지… 주주 눈치 안보고 제2 창업
새 비즈니스모델 창출이 관건

19세 때 대학 기숙사에 PC업체를 창업해 델(DELL)을 한때 세계 1위의 업체로 키웠던 마이클 델(48). 그는 정상에 올랐으나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10년 가까이 쇠락의 길을 걸어온 델을 구하기 위해 사실상 ‘제2의 창업’을 단행했다.

5일 사모펀드와 손잡고 약 244억 달러(약 26조5000억 원)를 들여 주주의 주식을 모두 사들인 뒤 회사를 스스로 상장 폐지하기로 했다. 주주와 이사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주식회사에서 강력한 경영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는 유한회사로 전환해 회사를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전략이다. 1988년 상장한 지 25년 만의 재도전이다. 델은 창업 당시 주위에서 만류하자 “나는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생존을 위한 과감한 선택을 한 그의 도전이 이번에도 성공할지 정보기술(IT)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주식 매입자금 244억 달러 가운데 150억 달러는 금융권에서 차입한 것이고 20억 달러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댔다. 회사 자산을 담보로 인수자금을 빌리는 차입매수거래(LBO) 방식으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전했다. 1월 주가보다 약 25% 프리미엄을 붙인 주당 13.5∼13.75달러에 주식을 사들였다. 그는 이날 “이번 매각이 델과 고객들에게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 것이다. 비상장사로 바뀌면서 회사가 변화를 위한 시간, 투자, 인내심을 벌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델이 현재 주력하고 있는 기업용 PC시장에서 더욱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이 성공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HP는 이날 델의 발표 이후 성명을 내고 “델의 불확실한 과도기가 늘어날 것이며 투자능력이 제한되고 고객이 떠날 것이다. 우리는 그 기회를 활용하겠다”고 평가 절하했다.

WSJ는 이번 델의 상장폐지가 기업이 중요한 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델이 2000년대 중반까지 ‘PC 업계의 제왕’ ‘PC 공룡’으로 불린 가장 큰 이유는 중간 유통단계를 없애는 다이렉트 판매로 비용을 줄이고 소비자 기호에 맞춘 ‘맞춤형 제작’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PC 업계에서는 없던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이었다.

하지만 다른 회사들이 델의 사업전략을 따라하면서 델의 입지는 급속히 줄어들어 결국 2006년 1위 업체의 자리를 HP에 내주고 현재는 중국의 레노버에 뒤진 3위 업체로 떨어졌다. 2004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던 마이클 델은 비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2007년 CEO로 복귀했지만 이때도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 PC시장 규모가 줄어드는 반면 노트북과 스마트폰 등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는 것을 놓치고 고성능의 PC를 출시하는 데 매달렸다. 또 기업용PC 시장에도 뛰어들었지만 IBM 오라클 등에 밀려 지난해 주가는 전년 대비 무려 31%가 폭락했다. 한때 1000억 달러를 웃돌던 시가총액은 230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마이클 델은 이번 상장폐지 이후에도 14%의 지분을 보유해 CEO와 이사회 의장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회사 개혁에 다시 나선다. 특히 이번에는 소프트웨어의 제왕인 MS가 20억 달러를 빌려주면서 양사의 협력 관계가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지도 관심거리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델#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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